대순사상의 새로운 패러다임
- 해원상생의 사상적 특징을 중심으로 - 일부 발췌
글 이경원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 교수)
해원상생의 사상적 특징
1. 해원사상
‘해원’사상에서 우선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원(冤)’의 의미이다. 여기서 ‘원’은 인간의 특별한 감정상태 혹은 정서적인 측면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그 한자의 구조를 살펴보면冖+免로 이루어져 있다. 한자옥편에는 그 뜻을 풀이하기를, “토끼가 굴레(冖) 밑에 있어서 달릴 수 없으므로 더욱 구부리고 꺾인다.”라고 하였다. 즉 자연의 동물인 토끼를 예로 들어 어떤 속박에 갇혀 마음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자유를 박탈당한 채 괴로워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원’의 의미가 도출될 수 있는데, 바로 그 속박을 가한 대상에 대해서 끝없는 원망(혹은 원한)을 품고 있는 감정 상태를 말하며, 나아가서 그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싶은 소원(혹은 희망하고 감정을 내포한다.
해원은 이처럼 원망과 소원의 감정을 모두 해결하여 완전한 자유를 얻게 하는 것으로 존재의 궁극적인 자기실현의 상태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원’이라는 한자(漢字)에 특별히 사람을 그려 넣지 않고 토끼라는 동물의 글자를 사용한 것은 해원이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사물 모두를 포함하고자 한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서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사물이 해원함으로써 진정한 이상세계가 실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사람은 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이러한 진리를 자각하고 세계에 실현시켜 나가는 주체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왜 이러한 ‘해원’의 진리가 필요한가. 그것은 대순사상이 출현하게 된 역사적인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다음은 『전경(典經)』(대순진리회의 경전)에 언급되어 있는 내용이다.
상제께서 七월에 「예로부터 쌓인 원을 풀고 원에 인해서 생긴 모든 불상사를 없애고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는 공사를 행하시니라. 머리를 긁으면 몸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인류의 기록에 시작이고 원(冤)의 역사의 첫 장인 요(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원을 풀면 그로부터 수천년 쌓인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리라. 단주가 불초하다 하여 요가 순(舜)에게 두 딸을 주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는 원을 품고 마침내 순을 창오(蒼梧)에서 붕(崩)케 하고 두 왕비를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게 하였도다. 이로부터 원의 뿌리가 세상에 박히고 세대의 추이에 따라 원의 종자가 퍼지고 퍼져서 이제는 천지에 가득 차서 인간이 파멸하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인간을 파멸에서 건지려면 해원공사를 행하여야 되느니라」고 하셨도다.( 공사 3장 4절)
위의 구절에 따르면 어느 시기부터 인류사회는 원(冤)의 뿌리가 형성되어 부정적인 역사가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역사적 이야기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왕위를 물려받아야 할 고대 동양(중국)의 어느 왕자가 정당하게 물려받지 못하고 소외됨으로써 태초의 ‘원’이 생겨났다.
이 원은 결국 원망하는 상대를 죽이게 되었으며 다시 반복되는 관계 속에 (동·서양에 걸쳐) 역사적으로 확산되었음을 말한다. 이로써 인류의 역사는 한마디로 원의 역사가 되었으며, 결국 전 인류는 원이 누적됨으로 인해 파멸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원이란 이같이 인류의 역사 전체에 대해 그다지 평화롭지 못한 과거로 이해한다. 나아가 대순사상은 인류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서는 ‘해원’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인류의 평화를 저해하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인간이 지닌 원의 감정 때문이며, 이를 풀고 해소함으로 인해 비로소 진정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감정,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음으로써 생겨나는 억울하고 화나는 감정,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다 이루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좌절하는 감정, 이러한 감정들이 모두 근원적으로 해소될 때 진정한 해원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원이 됨으로써 모든 인류가 화합하고 평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대순사상의 가르침이다.
2. 상생사상
해원상생에서 ‘상생(相生)’은 해원과 연결되어 있다. 즉 해원함으로써 상생이 되고 또한 상생의 실천을 통해 진정한 해원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여기서 ‘상생’은 그 반대가 되는 ‘상극(相克)’개념과의 대비를 통해 그 의미가 뚜렷해진다.
상극은 우선 ‘해원’에서 문제가 되었던 ‘원’을 발생시킨 원인이 되는 것이다.
태초에 인간사회에서 상호관계를 규정할 때 서로를 친밀히 여기기보다는 서로를 적대시하였으며, 상대를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였던 사회구조를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상극이다. 이러한 상극은 비단 인간사회에서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대순사상에서는 과거 우주적인 환경이 이와 같은 상극에 지배됨으로써 인간사회도 그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다음의 『전경』구절은 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상제께서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고 김 형렬에게 말씀하시고 그중의 명부공사(冥府公事)의 일부를 착수하셨도다.(공사 1장 3절)
위의 구절에 의하면 먼저 선천(先天)이라고 하는 세계의 실상을 언급하고 있다.
인류의 과거 역사는 모두 선천에 속하며, 여기에는 우주 사물도 포함되어 있다. 즉 이 세계는 선천과 후천이라는 두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기준이 되는 것은 바로 증산 상제의 위대한 활동이었던 천지공사이다.
이러한 천지공사 이전, 말하자면 19세기 말엽까지의 인류역사(혹은 우주역사)는 ‘상극’이라고 하는 원리에 지배된 부정적인 세계이다. 그것은 상호 배타적인 태도를 지니고, 서로를 분리시키며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끝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내온 아픔의 역사이다.
자연의 생태계도 소위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이 지배하여 힘이 세고 환경에 우세한 개체만이 살아남는 때였다. 이와 같은 상극의 세상에서 인류사회는 인간이 지닌 원(冤)의 감정으로 인해 더욱 치열한 투쟁을 일삼고 살아왔으며, 한시도 평화로울 때가 없이 상대를 향한 복수의 감정만을 불태워왔던 것이다. 따라서 세계는 원의 감정이 남아있는 이상, 또한 상극의 원리가 지배하는 이상 평화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상생의 진리가 필요한 이유는 위와 같은 설명에 기초해 볼 때 먼저 이 세계를 지배하는 근원적인 원리의 개선이 요구된다는 데 있다. 인간사회에서 원이 발생한 이유는 그 우주적 배경에서 볼 때 ‘상극’에 지배된 세계에 더 큰 원인이 있다.
우리가 살아온 세계의 구조가 이미 상극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고, 인간사회에서는 이를 원의 감정에 의해 서로를 죽이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인류사회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서는 보다 근원적인 처방으로서 이 세계를 상생이 지배하는 곳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증산의 천지공사는 이와 같은 세계의 구조적인 변혁을 위해 단행한 종교적인 대역사(大役事)이다. 여기서 증산은 그가 지닌 초월적인 신력(神力)으로 영계(靈界)를 새롭게 뜯어고치고, 모든 부조리(不條理)를 바로잡는 활동을 하였으니 그 주된 방향과 원리가 바로 ‘상생(相生)’이었다.
상생은 절대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며, 나의 행동지침은 오직 상대를 잘 되게끔 해주는데 목적이 있다. 상생의 원리란 상대가 없으면 내가 존재할 수 없고, 또한 상대의 성공과 이익이 모두 나의 성공과 이익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나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해쳐야만 하고 손해를 입혀야만 했던 선천과는 달리, 후천에서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 먼저 상대가 이익을 얻게 해야 나에게 혜택이 돌아올 수 있다는 정반대의 논리가 성립된다.
이로써 후천 세상은 상호적대감이 없어지고 오직 상호혜택만이 주어지는 새로운 인간관계가 성립됨으로써 다시는 원이 발생하지 않고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뿐만이 아니라 자연과 우주세계도 다 같이 상생에 지배됨으로 인해 모든 만물이 유기적으로 공존하며 조화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상생의 진리란 이처럼 후천세상을 주도하는 새로운 원리로서 해원을 가능하게 하고 또한 원을 근원적으로 소멸시킨다는 점에서 인류 평화를 달성하는 새로운 이념이 될 수 있다.
출처 : 대순회보 105호
http://webzine.daesoon.org/board/index.asp?webzine=136&menu_no=2190&bno=3941&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