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에는 우리 선조들의 많은 교훈과 이치가 담겨져 있다. 윷판을 보면 바깥이 둥근 것은 하늘을 뜻함이요, 안이 모진 것은 땅을 뜻함이며, 29개의 말밭은 중앙의 북극성을 중심으로 28수를 뜻하며, 중심자리와 네 귀를 빼면 24절후로 1년 기후의 변화를 뜻하고 있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하늘을 섬겼고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윷을 던졌으며 길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윷놀이는 단순한 놀이 차원을 벗어나 우주의 이치가 담겨져 있다. 전통의 윷놀이에서는 상대의 말을 잡고 잡히는 상극의 놀이지만, 대순에서는 상대의 말을 잡지 않는 ‘상생 윷놀이’가 전해지고 있다.
윷놀이의 유래와 종류
윷놀이는 우리나라 설 명절놀이의 하나로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유서 깊고 전통 있는 ‘세시풍속’이다. 윷놀이는 윷가락을 던지고 말(馬)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 한자어로는 ‘사희(柶戱)’ 또는 ‘척사(擲柶)’라고도 한다. ‘윷’이라 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놀이를 떠올리지만, 정작 윷이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윷점’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50~60년 전만 해도 외출할 때나 생활 속에서 윷점을 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윷놀이는 단순한 놀이 차원을 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윷놀이의 유래에 관해서는 그 설이 분분하다. 그 중에서 사학자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그의 저서인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윷판을 고조선시대 오가(五加)의 출진도(出陣圖)’라 하였다. 윷가락을 세는 칭호인 도개걸윷모[刀介乞兪毛]는 곧 가축의 이름을 쓴 오가의 칭호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도’는 돼지[豚], ‘개’는 개[犬], ‘걸’은 양[未], ‘윷’은 소[牛], ‘모’는 말[馬]을 뜻한다. 이병도(李丙燾)의 『국사대관(國史大觀)』에는 말판이 부여(夫餘)의 관직제(官職制)를 모의(模擬)한 사출도(四出道)01에서 유래되었다고 했다.
윷은 크게 장작윷(가락윷, 중윷, 채윷)과 밤윷 두 종류로 볼 수 있다. 장작윷은 길이 4치(13cm) 너비 7푼(2.3cm) 가량의 작은 윷과 길이 6치(20cm) 너비 8푼(2.6cm) 가량의 중윷(서울윷)이 있다. 밤윷은 밤알처럼 작다하여 불리는데 장작윷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으로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사용한다. 농민들 사이에 밭에서 작업하다 잠시 쉬는 사이에 팥이나 콩 두 알을 가지고 그 절반을 쪼개어 노는 일이 있다. 이러한 윷은 그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팥이면 팥윷, 콩이면 콩윷이라 한다.
놀이 방법(윷셈)과 담긴 사상
윷의 셈은 윷가락 중 평평한 면을 앞면이라고 하는데 이 앞면이 위로 향한 윷가락의 개수에 따라 도·개·걸·윷·모의 다섯 가지로 나누어진다.
말(馬)은 사각모양의 나무에 채색을 하여 4개를 사용하는 것이 정식이지만 대부분 주위에서 구하기 쉬운 물건을 사용한다.
‘도’는 말[馬]을 한 칸, ‘개’는 두 칸, ‘걸’은 세 칸, ‘윷’은 네 칸, ‘모’는 다섯 칸 전진시킨다. ‘윷’과 ‘모’가 나오면 다시 한 번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말[馬]을 쓰는 것을 일러 ‘말코’를 쓴다고 하는데, ‘도(출발점)’에서 시작(출발)하여 한 바퀴를 돌아 ‘참먹이(도착점)’로 나오는 것에 목적이 있다. 먼저 가는 사람의 말을 뒤따라오는 사람의 말이 잡을 수 있도록 하는데 이것을 ‘잡기’라 한다. 서로 쫓고 쫓기는 상극의 원리 속에서 잡힌 말은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반면, 같은 사람의 말이 같이 겹쳐지게 될 때면 함께 움직여 갈 수 있는데, 이를 ‘업기’라 한다. 물론, 이때도 잡히면 함께 움직인 모든 말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말을 잡은 사람은 윷을 한 번 더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4개의 말[馬]이 참먹이로 먼저 나오는 편이 이기는 것이다.
말이 가는 길을 말길이라 하는데, 절후의 변화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말이 윷판의 입구에서부터 출발해서 ‘모’와 ‘방’을 지나오는 최단 경로는 해가 가장 짧은 동지를 나타내는 것이고, ‘모’를 지나 ‘방’과 ‘찌모’를 거쳐 오는 경로는 해가 고른 춘분을 말한다. ‘모’를 지나 ‘뒷모’와 ‘방’을 돌아오는 것은 밤이 고른 추분을 나타내고, ‘모’와 ‘뒷모’·‘찌모’를 모두 돌아와야 하는 최장 경로는 해가 가장 긴 하지를 나타낸다. 즉 윷판은 하나의 물건이기는 하지만 지극한 우주의 이치가 들어있는 것이다
윷가락을 보면 역의 원리로 되어있어 앞·뒷면은 음양을 뜻하고, 윷가락이 네 개인 것은 사상(四象)을 뜻하며, 윗면의 4개와 밑면의 4개를 합하면 8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8괘를 뜻한다.
윷판은 종이나 나무 위에 원형 또는 정사각형 모양으로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짐)을 뜻하며 하늘과 땅을 형상화한 것이다. 윷판 원형의 20밭(말이 머무는 자리)과 중앙을 정점으로 ╂자형의 9밭 합해 모두 29밭을 그려 만든다. 윷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16세기 조선 선조 때 김문표(金文豹, 1568~1608)가 제시한 「사도설(柶圖說)」에 “윷판의 바깥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요, 안이 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니 윷판은 하늘이 땅을 둘러싼 모습이라. 또 가운데 있는 것은 북극성이요, 옆으로 벌어져 있는 것은 28수이니 윷판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28수가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했다.
윷판에서 중앙은 천원(天元)이다. 우주나 만물에는 주재자가 있는 것이요, 그 주재자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윷판의 방(천원)을 거치는 말밭을 운용하게 되면, 가장 빠르게 갈 수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멀리 우회하게 되어 있다. 방을 중심으로 하여 상·하·좌·우는 동서남북의 4방위와 춘하추동의 4계절을 뜻한다. 방은 중앙 토(土)인데 4방위와 4계절이 모두 토를 중심으로 운용되는 것이다.
이어 방을 중심으로 바깥의 다섯 단위의 말밭은 각각 5행을 나타낸다. 5행은 방위와 계절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요, 이 5행이 움직여서 바로 계절을 이룬다. 또 그 계절은 방위에 따라 추위·더위 등의 특성을 나타낸다. 첫 다섯 말밭(앞밭)은 동쪽과 봄, 다음의 다섯 말밭(뒷밭)은 북쪽과 겨울, 세 번째 다섯 말밭(쨀밭)은 서쪽과 가을, 마지막 다섯 말밭(날밭)은 남쪽과 여름을 상징했다. 그러므로 참먹이는 남쪽자리가 된다.
그리고 29개의 말밭 중 방과 네 귀의 중심자리를 빼고 나면 24개가 된다. 이 숫자 또한 1년의 기후 변화에 따른 24절후를 의미하고 있다. 또 가운데의 방을 뺀 28말밭을 28수의 별자리와 견주기도 한다. 이때 방은 북극성으로 보는 것이다.
상생 윷놀이
윷판이 곧 천지를 형상화한 것이며 윷판을 달리는 말[馬]은 천지의 운행을 상징화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윷을 만든 사람은 도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전통의 윷놀이 방식은 상대의 말을 서로 잡으려는 상극지리(相克之理)가 지배하는 선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양편으로 나누어서 서로 잡고 잡히는 관계 속에서 지고 이김이 결정난다. 이에 반해 도인들은 ‘상생 윷놀이’를 즐겨왔다. 도주님께서는 상생으로 말을 두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상대의 말을 잡지 않고 가는 행마법으로, 윷을 던져 나오는 수대로 나가되, 윷판의 말[馬]이 참먹이(출구)에 정확하게 멈추어 선 뒤라야 나갈 수 있다. 만약 말이 가는 걸음이 과하여 출구를 지나치게 되면 다시 한 바퀴 돌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도수에 맞아야 나갈 수 있으며 이것이 상생원리에 맞는 척사행마법(擲柶行馬法)인 것이다.
상생 윷놀이는 상생지리(相生之理)가 지배하는 후천의 모습을 상징하면서, 서로 잘 살고 남을 잘되게 하는 법이며, 함께 살고 도우면서 살아가는 합덕조화(合德調和)를 말하는 것이다. 말[馬]이 가는 걸음이 과하여 출구를 지나치는 것을 보면 도인들이 수도를 하면서 ‘넘치고 과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부족하면 쓸 수 있어도 넘치면 못쓴다는 말’이 있듯이 이 놀이를 보면서 ‘수도 중에 넘친다 싶으면 처음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겸손한 자세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새해 아침을 맞아 화목한 분위기에서 서로 격려하며 상생 윷놀이로 2009년 기축년(己丑年)을 활짝 열어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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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부여의 통치제도로 수도(首都)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방위에 따라 지방을 4개 구역으로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