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구 규범 윤리학과의 대비를 중심으로 -
Ⅰ. 들어가며
이 글은 19세기 말~20세기 초 한국에서 출현한 대순사상의 무자기(無自欺) 개념에 나타난 상생 이념의 윤리적 특징을 규범 윤리학과의 대비하에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이다.
과학과 종교, 세속과 종교를 구별하는 전통 속에서 발전한 서양 규범 윤리학에서 윤리란 종교에 기초한 규율적 성격이 강하다. 반면 천지인 삼재(三才)가 불가분인 동양 전통에서 윤리란 본래의 자연법칙인 도덕과 불가분 관계인 인도(人道)를 의미한다. 다만 근세 초 일본에서 영어 ‘ethics’가 윤리학 및 윤리라는 한자어로 번역된 후 하나의 학문 분야로 정립되면서 인도로서의 본래 의미가 많이 축소되게 된다. 언어는 사유 내용과 범위를 한정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래 동양사상 전통에서 윤리란 천지자연과 동떨어진 개별적 분과학문이 아니다. 이는 천지자연이 가는 길과 동행하는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의미한다. 이처럼 자연과 인간의 길을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는 전통에서 출현한 대순사상의 윤리관 또한 종교 규율이나 세속 학문 또는 생활 규범에 그치지 않는 도리로서의 측면이 강하다. 특히 무자기에 기초한 신도(神道)로서의 대순사상 윤리관의 성격은 교리 이전에 도리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그러므로 교리일 뿐 아니라 도리인 대순사상의 핵심 교의를 분과영역으로 전문화된 기성 학문 체계 속에서 비교 검토하는 방법으로 기술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단 본 연구에서는 현대인들이 공유하는 윤리 개념을 통해 대순 사상의 이해 지평을 확대하고자 정형화된 일반 학술 이론인 규범 윤리학과의 대비를 통해 무자기에 근거한 해원상생 윤리관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 서양 규범 윤리학의 3대 흐름
서양 고전 규범 윤리학에는 크게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의무론적 윤리설,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ㆍ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의 공리주의 윤리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384~B.C.322)로부터 비롯된 덕 윤리설이 있다.
의무론적 윤리설은 도덕법칙에 일치하는 행위를 옳은 행위로 규정하는 도덕법칙 중심의 윤리관으로서 행위의 동기를 중시하는 동기론적 입장이다. 이에 비해, 공리주의 윤리설은 최선의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가 옳다는 목적론적 윤리관에 속하며 결과에 초점을 두는 결과론적 입장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중심 원리로 하며 최대 다수의 행복이라는 양적 측면을 강조하는 벤담의 입장과 행복의 내용 중 정신적ㆍ심리적ㆍ질적 요소를 중시하는 밀의 공리주의 윤리관으로 대별 된다.
한편, 덕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인품과 소질의 계발과 함양, 정신적 관조 등을 개인 행복의 주요 조건으로 제시한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목적론적 윤리관이다. 보편적 원칙이나 선 일반 등의 규범 자체보다는 각 개인의 정서ㆍ감성ㆍ관심ㆍ상황과 관계성 등을 중시한다. 각 입장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칸트의 원칙주의적 입장
윤리학에 관한 그의 주저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칸트는 개별적 인격을 존엄성이라는 목적을 지닌 자율적이고 합리적 입법자로서 정초한다.1 그에 따르면,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의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명령이다.”2 칸트는 의지에 주어지는 모든 명령을 두 종류, 즉 가언 명령(假言命令, Hypothetisch Imperativ)과 정언 명령(定言命令, Kategorische Imperativ)으로 구별한다. “가언 명령이 가능한 행위의 실천적 필연성을 다른 사람들이 의욕 하는 다른 어떤 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표상하는 것이라면, 정언 명령은 한 행위를 그 자체로서 어떤 다른 목적과 관계없이 객관적ㆍ필연적인 것으로 표상하는 그러한 명령이다.”3 이로써 현상계와 예지계에 동시에 속한 이성 주체로서의 개인은 정언명령에 따라 합리적으로 보편적 도덕법칙을 도출하게 된다.
이와 같이 보편적 도덕법칙에 의거, 의무론을 정초한 칸트는 보편화 정식과 인간성 정식을 정언명령의 대표적 정식으로 천명한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보편화 정식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해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오직 그러한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4
(나) 인간성 정식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5
이상의 정식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정언명령은 행위 결과와 관계없이 행위 그 자체가 선(善)이기 때문에 무조건적 실천을 요구하는 도덕 명령으로 언명된다.6 그런데 합리적 이성 주체로서의 개인이 정언명법에 따라 도덕법칙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보편법칙을 의욕할 수 있는 초월적 자유를 지녀야 한다. 또 선의지에 따라 자유를 실현하고자 “정언명법 형식을 합리적으로 도출하려면 행위가 보편화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마음을 속이지 않는 문제와 관련하여 거짓 약속의 격률을 행위 원칙으로 정립할 경우, 모순 없이 보편화될 수 없다. 거짓 약속이 보편화된다면 약속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7
이러한 특성을 고려할 때,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학 역시 대다수 서구 윤리학과 마찬가지로 자연법적 계약론 전통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객관 원리에 따르는 보편적 도덕법칙을 강조하면서도 자연법적 공동체 내에서 자유를 실현하려는 자율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다만 자유의 실현이라는 대이념이 선한 의지로 도덕을 실천해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있다는 점에서 의무론적 도덕관으로 평가할 수 있다.
2. 결과주의 및 밀의 공리주의적 입장
공리주의 완성자 밀에 따르면, “도덕성의 기초로서 자신의 효용 원리는 이성에 대한 칸트의 강조에 비해 훨씬 강한 직관적 기초를 갖는다. 특히 왜 특정 행위가 올바른지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8나아가 밀은 결과주의(Consequentialism) 도덕 원리의 맥락에서 개인이 자신을 실현하는 삶을 스스로 규제하기 위한 안녕(well-being)의 요소로서 자율(autonomy)을 중시한다. 한편 “행위의 옳고 그름이 그 결과에 의해서만 판단될 수 있다.”9고 주장한다.
이처럼 결과주의에서 올바른 행위란 행위자에게 가능한 행위 가운데 체계 내에서 본질적 가치를 지닌 것이 최선의 결과를 산출하는 행위를 말한다. 대표적 결과주의인 공리주의에서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것은 행복이다. 하지만 비결과주의 윤리관에서 올바른 행위란 종종 다른 행위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요컨대 결과주의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나의 행위가 특정 결과를 초래하는가가 아니고 다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이다.
이처럼 공리주의는 특정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기준을 오직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원칙 및 그에 따른 결과로 판단하는 결과주의적 윤리관이다. 특히 개인의 행복과 쾌락에 기여하는 효용 원리만을 도덕적 선의 기초로 간주한다.10 이러한 맥락에서 양심을 속이지 않는 행위 또한 효용 원리에 상응한다는 점에서 선으로 판단한다.11 즉 자신과 남을 속이는 ‘거짓’은 그것 자체가 그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거짓을 행할 때 초래되는 부작용과 갈등이 자신과 공동체의 행복을 저해하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만일 ‘거짓’을 행하는 것이 개인과 전체의 효용을 증진할 경우, 거짓도 허용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계약론적 전통에 있는 이 윤리관에서 가장 중시하는 가치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 행복 증진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공동체의 행복과 효용이다. 따라서 보편적 의무나 덕성 그 자체는 중시되지 않는다.
3. 덕 윤리학적 입장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주창된 덕 윤리학은 “유복한 삶 또는 행복(eudaimonia)을 목표로 한다.”12 나아가 그 실현을 위해 개인의 탁월성 고양과 덕의 완성을 목표로 유덕한 행위를 강조한다. [니코마쿠스 윤리학]에서 도덕적 덕성이란 “올바르게 행위 함에 의해 형성된 올바른 행위 습관”으로 정의된다.13 또 올바른 행위란 “올바른 원칙에 순응하는 것”14, 즉 “과부족을 경계하면서 해당 행위의 반복을 통해 습득된 것”15으로 기술된다. “개인적 삶의 목표를 획득하기 위한 정직ㆍ성실ㆍ절제ㆍ중용이나 실천적 지혜(phronesis)와 같은 덕목 역시 행복을 추구하는 도덕적 행위자가 체화한 탁월한 인격적 특성이나 성향”16으로 중시된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비롯된 덕 윤리학은 소규모 도덕 공동체 속에서 행위자의 도덕성 회복과 함양을 강조한다. 이 윤리관은 인성과 재덕을 주요 덕목으로 본다는 점에서 개인주의와 고립화, 전염병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등 현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효과적 방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규모 공동체에는 적용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특히 절대적 규범이나 기준의 부재로 상대주의적 단점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누스바움(Nussbaum) 등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공통의 덕들을 제시한다.17 한편 의무론적 윤리관과 결합한 방식이나 동기론과 결과론을 포괄하는 방식 등을 통해 보편성 확보를 시도하기도 한다.18 그렇지만 상대성을 전제하는 목적론이라는 점에서 ‘거짓’에 대한 입장 또한 의무론의 보편적 선 개념과는 다르다. 즉 거짓의 경우, 유덕한 성품의 함양이나 탁월성에 기여하지 않기 때문에 극복해야 한다는 소극적 측면이 있다.
Ⅲ. 서구 규범 윤리학과 대비해 본 대순사상의 윤리관
1. 의무론적 윤리관의 측면
대순진리회 훈회 첫 번째 항목인 ‘마음을 속이지 말라’에서는 정언명령과 마찬가지로 ‘사심을 버리고 양심을 회복할 것’을 수도의 당위이자 수도인의 의무로 천명한다.
마음은 일신의 주이니 사람의 모든 언어 행동은 마음의 표현이다. 그 마음에는 양심, 사심의 두 가지가 있다. 양심은 천성 그대로의 본심이요, 사심은 물욕에 의해 발동하는 욕심이다. 원래 인성의 본질은 양심인데 사심에 사로잡혀 도리에 어긋나는 언동을 감행하게 됨이니 사심을 버리고 양심인 천성을 되찾기에 전념하라. 인간의 모든 죄악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하여 일어나는 것인즉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라.19
이상과 같이, [대순진리회요람]에는 수도에 전념하여 올바른 마음으로 모든 죄를 근절할 것을 수도의 근간이자 의무로써 명시한다. 이는 “모든 죄악의 근원이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되므로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해야 한다.”20는 의무론적 윤리학의 테제이다. 여기서 무자기의 근원인 양심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이 천성의 회복이 당위로써 제시된다. 이에 무자기는 천명에 따라 행해야 할 의무가 되고 천성인 양심은 회복해야 할 의무의 존재론적 근거가 된다.
한편 수행 측면에서도 훈회에 따라 ‘양심을 속이지 않음’을 수도인의 올바른 행위 지침과 의무로 삼는다는 점에서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관의 특색과 상통점이 있다. 칸트의 정언명법 또한 선의지를 자신의 행위 준칙으로 삼고 이를 보편화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칸트에서 도덕법칙의 근원이자 선의지의 실현인 자유가 예지계로부터 부여받은 이성에 기초한 것처럼 대순사상에서 무자기의 발현으로서의 상생 이념 또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양심에 기초해 있다. 실천 원리 측면에서도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가 현상계에서 자율적으로 행해야 하는 이념인 것처럼, 대순사상에서 무자기 역시 수도의 목적 가운데 하나일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해야 하는 수행의 근간이다.
[대순지침]에도 ‘근원인 하늘로부터 천명으로 부여받은 양심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의 실천’을 올바른 사람이 행해야 할 의무론적 수행의 근거로 상정한다.
과오를 경계하기 위하여 예부터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自欺自棄)이요, 마음을 속이는 것은 신을 속임이다(心欺神棄).”라고 하였으니, 신을 속이는 것은 곧 하늘을 속임이 되는 것이니 어느 곳에 용납되겠는가 깊이 생각하라.21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대순사상에서 무자기는 자신뿐만 아니라 하늘로부터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천성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나아가 신을 속이지 않는 데까지 이르는 관계적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칸트 역시 대순사상과 마찬가지로 양심에 따른 행동을 행위의 준칙으로 삼는다. 하지만 하늘과의 관계보다는 계약론적 전통에서 타인과의 관계, 즉 약속과 신뢰의 측면을 더욱 중시한다. 이러한 점에서 동아시아 전통에서 신도와 도리를 강조하는 대순사상의 무자기관과 다른 성격을 갖는다. 특히 칸트 윤리학의 경우, 행위자가 처한 상황이나 맥락과 관계없이 거짓을 행하지 않는 것을 보편법칙으로 절대시함으로써 인륜을 저버리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예컨대 자신의 친구를 해하려는 살인자가 자신의 집에 방문했을 때, 친구가 집 안에 있느냐는 살인자의 질문에 대해, 칸트는 사실대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건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진실을 말하는 것이 의무이기 때문이다. 칸트에 따르면 “정언명령은 어떠한 조건에도 제한을 받지 않으며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명령이다. 또 실천적으로도 필연적인 것으로 본래적 지시 명령이다.”22 비록 거짓말을 함으로써 한정된 사람들에게 혜택을 가져올 수 있을지라도 전체적으로 볼 때 거짓말은 진실을 말하는 것의 순수성을 격하시킬 수 있다. 비록 친구를 곤경에서 구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은 정언명법을 위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는 진실을 말하는 권리와 의무라는 법칙을 지키기 위해 친구와의 인정과 인륜의 덕을 위배할 수 있다. 즉, 인간을 위해 윤리와 법칙이 나침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칙과 윤리를 위해 인간이 존재하게 되는 역설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일본 식민지 시기에 자신의 집에 은거해 있는 독립지사의 행방을 탐문 하는 일본 순경에게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마음을 속이지 않는 행위일까? 이는 “하나를 둘이라 하지 않는” 믿음의 조건에는 해당하지만, “셋을 셋이라고 하지 않는” 믿음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것일 수 있다. 법칙과 의무 이전에 인륜과 덕성, 대의 또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륜에 알맞은 처신 처세는 원만한 관계나 타인의 보호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인존 이념 실현에도 필요한 덕목일 수 있는 것이다.
2. 결과주의 윤리관과의 대비
[대순진리회요람]에는 대순진리회의 교리 개요와 목적이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윤리도덕(倫理道德)을 숭상(崇尙)하고 무자기(無自欺)를 근본(根本)으로 하여 인간개조(人間改造)와 정신개벽(精神開闢)으로 포덕천하(布德天下)ㆍ구제창생(救濟蒼生)ㆍ보국안민(輔國安民)ㆍ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建設)을 이룩한다.23
한편 이어서 명시된 종지ㆍ신조ㆍ목적 중 무자기-정신개벽은 목적의 첫 번째 항목에 해당한다.
무자기-정신개벽
지상신설실현-인간개조
지상천국건설-세계개벽24
이처럼 대순진리회에서 수도의 근본인 무자기는 수도의 기반이면서 목적이 된다. 본래의 청정한 본성, 양심을 회복하는 것이 수도의 목적인 도통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한편, 자신 이외에 많은 사람이 도통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려는 포덕천하 이념에는 목적론적 윤리관의 특성도 나타난다. 포덕을 통해 많은 사람이 상제의 덕화를 입어 함께 후천선경의 복록을 누리게 하려는 이념은 목적론적 특성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대순사상의 윤리관은 목적론적 전통하에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이념으로 많은 이들이 좋은 결과를 누리게 하려는 공리주의, 복지주의 등 결과론적 윤리관과 유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공리주의와 기타 서구의 결과주의 윤리관은 타인을 구하기 위해 특정인을 상해하거나 거짓을 행하는 것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순사상에서는 아무리 효용성과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특정 개인에게 상해를 가하거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즉 어떤 선한 의도와 유용한 결과도 상해나 희생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러한 행위는 그에 상응하는 겁액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인존과 상생 이념에도 위배 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상생이란 양자 모두 잘되어야 한다는 이념이다.
따라서 수도인은 어떤 것이 전체의 효용을 위해 바람직하냐는 기준 외에도 타인과 행위자 자신에게 어떤 종류의 고려사항이 적절한지 성찰해야 한다. 반면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공통 요소에 관한 사례를 분석할 경우, 행위자가 올바르지 않은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불건전한 행위로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전체 복리를 위해 불건전한 행위를 하는 이에게 상해를 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더욱이 공리주의 윤리관에서는 전체 효용성의 극대화를 위해 개인의 건설적 사업 계획이나 소신 있는 가치관을 뒤로 미루도록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행위자를 그의 행위 및 자율적 가치관에 근거한 행위 원천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존중하지 않게 된다. 수도 과정에서 임원과 수반들이 무자기에 근거해 서로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도인의 양심과 감성을 공리주의적 가치의 대상으로만 다룰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수도인은 세상에 대해 올바름을 실천하는 감각이 남달리 발달 되어 있다. 올바름에 바탕을 두고 선과 정의를 지향하는 특정 감정이나 정서를 지니는 것이다. 따라서 상식적 정서를 도덕적 자아 외부의 변화하는 감정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오히려 각자의 양심에 기반한 자율적 정체감을 약화할 수 있다.
또 공리주의와 같은 결과주의 윤리관에는 허용 가능한 것에 관한 기준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공리주의 가정 상, 바람직한 행위의 결정 기준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행위 결정 과정에서 전체의 효용이나 공리라는 기준에 의거, 영향력 있는 개인의 선입견과 중심적 가치에 의한 왜곡이 개입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3. 덕 윤리 및 목적론적 윤리관의 측면
그렇다면 대순사상에서 나타나는 목적론적 윤리관 가운데 덕 윤리학의 측면은 어떠한가? 이는 수도인들이 올바른 언어ㆍ행동ㆍ처사와 인격완성을 위해 배양해야 하는 인품 및 덕성 계발과 관련되어 있다. 살펴보았듯이, 아리스토텔레스 덕 윤리학에서 올바른 행위는 “과부족을 경계하면서 해당 행위의 반복을 통해 습득된 것”25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순진리회 수칙에도 도인의 옥조(玉條)인 무자기에 따라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 과부족이 없는가를 살펴 고쳐 나갈 것”26이 명시되어 있다. 또 덕 윤리학과 같이 [대순지침]에서도 “명덕(明德)을 수행하고 재덕(才德)을 계발하여 지선(至善)에 이르도록 힘써 나가야 함”27을 강조한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 덕 윤리학에서는 행복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상정하고 관조 등을 완전한 행복, 최상의 덕을 실현하는 행위로 간주한다.28 이와 마찬가지로 지상천국 건설 및 도통군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대순진리회 수도 법방에서도 기도ㆍ수련 등이 중시된다.
하지만 대순사상에서 도통이라는 목적은 개인의 최상의 행복을 이루려는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통해 포덕천하와 구제창생이라는 하늘의 뜻을 받들려는데 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천명을 받들기 위해 해원상생과 보은상생 이념을 바탕으로 실력과 덕성을 갖춤으로써 인격완성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순사상의 윤리관에는 오히려 도덕적 행위자의 주체적 덕성 함양과 실천적 지혜를 중시하는 현대적 덕 윤리학, 특히 행위자 중심 덕 윤리학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단 행위자 중심 현대 덕 윤리학이 상대주의적 특성을 띠는 데 반해, 대순사상의 상생적 윤리관은 수도의 완성인 도통진경을 향해 일상생활에서 해원상생과 보은상생 양대 이념을 생활화하여 실천 수행함으로써 현대 덕 윤리의 개인주의적 상대성을 넘어 군자로서 덕을 세상에 실천하려는 동양적 덕 윤리관의 규범적ㆍ관계적 특성을 나타낸다. [전경]에서는 인격 함양과 올바른 처신 처세를 통해 행위자의 마음과 행위가 어떻게 상대주의적 차원을 넘어 타인에게 덕이 되는 규범적 차원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 여러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원수의 원을 풀고 그를 은인같이 사랑하라. 그러면 그도 덕이 되어서 복을 이루게 되느니라.29
「한 고조는 소하(蕭何)의 덕으로 천하를 얻었나니 너희들은 아무것도 베풀 것이 없는지라. 다만 언덕(言德)을 잘 가져 남에게 말을 선하게 하면 그가 잘 되고 그 여음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고 남의 말을 악하게 하면 그에게 해를 입히고 그 여음이 밀려와서 점점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 삼갈지니라.」 하셨도다.30
이상의 말씀과 같이 대순사상 윤리관의 핵심은 해원상생의 생활화에 있다. 즉, 나와 남, 선과 악으로 구별되는 대립이나 원(冤)을 스스로 풀고 남 잘되게 하는 해원상생의 일상적 실천을 통해 도덕군자를 지향하는 윤리관을 나타낸다. 이렇듯 실천수행 맥락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덕을 펴려는 이러한 마음가짐은 포덕으로 구체화 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시장판이나 집회에 가서 내 말을 믿으면 살 길이 열릴 터인데 하고 생각만 가져도 그들은 모르나 그들의 신명은 알 것이니 덕은 너희에게 돌아가리라.31
포덕은 해원상생ㆍ보은상생의 양 원리인 대도의 이치를 바르게 알려 주는 것이다.
포덕은 인도를 상도하여 윤리 도덕의 상도를 바로 이룩하는 것이다.
포덕은 ‘덕을 편다’는 말이니 겸허와 지혜의 덕으로 사로 인하여 공을 해치지 말고 보은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32
한편, 대순사상은 학교 교육 측면에서도 공공의 윤리도덕 정신을 갖춘 참된 인간 육성을 목표로 전인교육을 지향함을 명시하고 있다.
학교교육은 전인교육을 통한 국민윤리도덕과 준법정신을 함양하여, 건전한 공민으로서 국리민복에 기여하는 심신이 건실한 참된 인간을 육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33
이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무자기를 바탕으로 해원상생의 도리를 종교적 법리로 하는 대순사상의 윤리관은 개인의 상대적 윤리를 넘어 전 인류의 화평을 지향하는 공공윤리 차원에서 덕 윤리의 특성을 나타냄을 알 수 있다.
해원상생은 전 세계의 평화이며 전인류의 화평이다. 전세계 인류의 화평이 세계개벽이요 지상낙원이요 인간개조이며 지상신선이다. 인류가 무편무사하고 정직과 진실로서 상호 이해하고 사랑하며 상부상조의 도덕심이 생활화된다면 이것이 화평이며 해원상생이다.34
Ⅳ. 나가며: 대순사상 윤리관의 특성
서구 규범 윤리학 개념을 적용할 때, 대순사상의 해원상생 윤리관은 덕 윤리학의 특성을 중심으로 한 목적론적 윤리관과 의무론적 윤리관의 특성을 모두 아우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동아시아 덕 윤리 및 신도의 원리에 의거, 서구 규범 윤리학 개념을 뛰어넘는다. 특히 신ㆍ인의 해원으로 귀결되는 신도의 원리와 해원상생ㆍ보은상생 윤리관에 따른 도덕군자 양성은 서구뿐만 아니라 동양의 덕 윤리에도 나타나지 않는 이념이다.
해원상생의 윤리관은 ‘척을 짓지 않고 남을 잘되게 하는’ 윤리로 표출된다. 이때 무자기 이념은 해원상생 원리를 실천함에 있어 출발점(방법)이자 목표(결과)로서 기능한다. 또한 무자기에 기반한 보은상생의 실천은 한 개인이 일생을 통해 받은 수많은 은혜에 대한 보은과 상생의 의무로서 표출된다.
이상 논의에 기반하여 무자기에 기초한 해원상생의 윤리적 특성을 서구 규범 윤리학과 대비해 보면 다음의 네 가지 형태로 요약할 수 있다.
(1)무자기를 수도의 규범적 근거로 삼는 의무론적 윤리관의 특성이 있다.
(2)무자기에 근거해 지상 신선 실현 및 지상천국 건설을 목표로 하는 목적론적 덕 윤리관의 특성을 나타낸다.
(3)인격완성으로서의 도통을 최상의 덕의 실현으로 지향하는 동아시아 덕 윤리관의 요소가 있다.
(4)여타 종지와 관련해 볼 때, 대순사상에서 무자기는 도통진경을 향한 해원상생 실천의 출발점이자 수도의 목적으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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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Immanuel Kant, Groundwork for the Metaphysics of Morals, In Allen Wood eds., and translated with essays by J. B. Schneewind, Marcia Baron, Shelly Kagan, Allen W. Wood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2), pp.51-54; Stephen Darwall L., “Self-deception, Autonomy, and Moral Constitution,” In Brian P. McLaughlin & Amelie O. Rorty, eds., Perspectives on Self-Deception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8), p.407.
02) mmanuel Kant, The Metaphysical Principles of Virtue, Translated by J. Ellington (Indianapolis: Bobbs-Merill Co. 1964), pp.103-104; Darwall, op. cit., p.408.
03) “가언 명령이 기술적인 숙련의 규칙이거나 실용적인 영리함의 충고라면, 정언 명령은 그 자체로 윤리성의 법칙이다. 법칙의 보편성과 이 법칙에 맞게 행위해야 한다는 준칙의 필연성만을 포함하고 있는 정언명령의 순전한 개념이 자신의 정식을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김재호, [윤리형이상학 정초] (서울: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6), [철학사상] 별책 제7권 제14호, pp.29-30;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정초], 백종현 옮김 (서울: 아카넷, 2005), pp.118-120 참조.
04) 임마누엘 칸트, 앞의 책, p.132; 김재호, 앞의 책, p.89.
05) 임마누엘 칸트, 앞의 책, pp.147-148; 김재호, 앞의 책, p.101.
06) mmanuel Kant, Groundwork for the Metaphysics of Morals, op. cit., pp.33-40.
07) 임마누엘 칸트, 앞의 책, pp.154-155.
08) John Stuart Mill, Utilitarianism (Kitchener: Batoche Books, 2008), p.8, pp.28-35.
09) Ibid., pp.24-25.
10) Ibid., p.25.
11) 이에 대한 칸트 윤리학의 입장에서의 비판에 관해서는 Shelly Kagan, “Kantianism for Consequentialists,” In Immanuel Kant, Groundwork for the Metaphysics of Moral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2), p.142; Allen Wood W., “What is Kantian Ehtics?” In Immanuel Kant, Groundwork for the Metaphysics of Moral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2), p.163 참조.
12) Aristotle, Aristotle: The Nichomachean Ethics, Translated by H. Rackham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99), p.25.
13) Ibid., pp.70-71.
14) Ibid., pp.74-75.
15) Ibid., p.77; Stephen Darwall, op. cit., pp.12-13.
16) Aristotle, op. cit., pp.33-35.
17) Martha Nussbaum, “Non-relative virtues: An Aristotelian approach,” Peter A. French, Theodore Edward. Uehling and Howard K. Wettstein, Midwest Studies in Philosophy, Vol. III, Ethical Theory: Character and Virtue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99), pp.35-45.
18) Alasdair MacIntyre, After Virtue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4), pp.263-264.
19) [대순진리회요람], pp.18-19.
20) 같은 책, p.19.
21) [대순지침], p.42.
22) 임마누엘 칸트, 앞의 책, p.120; 김재호, 앞의 책, p.82.
23) [대순진리회요람], p.14.
24) 같은 책, p.17.
25) Aristotle, op. cit., p.77.
26) [대순진리회요람], p.21.
27) [대순지침], p.46.
28) Aristotle, op. cit., pp.239-249.
29) [전경], 교법 1장 56절.
30) 같은 책, 교법 2장 50절.
31) 같은 책, 예시 43절.
32) [대순지침], p.19.
33) 같은 책, p.104.
34) [포덕교화기본원리], p.8.
출처 : 대순종학 1집
- 대순사상의 무자기와 상생윤리관의 특징 - 김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