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유오(深深有悟), 그 시작의 의미

인문/칼럼천상 (선녀) 대순웹진

심심유오(深深有悟), 그 시작의 의미

수행의 본질은 한 영혼의 능동적 힘으로부터 기인한다

   

 

▲ 지옥문(생각하는 사람 부분, The Gates of Hell by Auguste Rodin, 1800 to 1917) - 출처 : 대순회보 186호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이 단테(1265-1321)의 『신곡(La divina commedia)』에 영향을 받고 만든 조각 작품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조각상이다. 작품 속에는 지옥으로 들어선 인간의 고통과 번뇌, 죽음을 표현한 조각상들이 펼쳐지는데, ‘생각하는 사람’은 그러한 광경 가운데 위치해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생각하는 사람’은 심우도(尋牛圖)의 한 장면을 무척이나 닮아 있다. ‘심심유오’의 풍경 속에 한 동자가 앉아 턱을 받히고 깊이깊이 생각하는 모습, 그것은 영락없이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고통 속에 가로놓인 인간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 조각상에 새겨진 몸 전체의 강직한 긴장은 생각과 성찰의 과정이 담고 있는 숭고한 노고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한편, 심심유오 속 동자의 모습은 ‘생각하는 사람’처럼 거친 질감을 가진 고뇌의 빛을 그리진 않지만 생각의 삼매 속에 빠져 무엇인가를 깊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생각에 잠긴다는 것은 마음속에 영혼의 거울을 비추는 것과 같다. 삶의 일상적인 흐름 속에 그 일상성을 깨는 크고 작은 문제들, 시간의 공허 속에 찾아오는 허무감, 그리고 삶에 대한 회의와 의문. 이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 찾아올 때, 인간은 자신을 비춰볼 거울을 찾는데, 이것이 생각이라는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은 살아있는 인간이다. 생각이란 고통과 번뇌, 죽음에 맞닿은 인간이 스스로 영혼의 잠을 깨워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대순진리회 심우도 벽화 - 심심유오(深深有悟)

   

심우도의 심심유오는 수행의 첫 시작에 대한 그림이다. 깊이깊이 생각하는 동자의 모습이 수행의 첫 시작이라면 그것은 인간 스스로가 영혼의 잠으로부터 깨어나는 순간이 바로 수행의 시작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듯 수행의 첫 관문도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열어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심심유오는, 수행이 단순한 결심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자아가 수행의 인연에 이르기까지 겪어온 삶의 희노애락 끝에 열린 귀한 사유의 열매라는 것을 알려준다.  

   

  수행의 본질은 그렇듯 한 영혼의 능동적 힘으로부터 기인한다. 물 한 모금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수 없는 것이 수행의 참다운 자세이듯 삶의 무게 속에 스스로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삶의 성찰에 이르게 하고 그 힘이 뿌리가 되어 수행의 결심으로 뻗어간다. 그러한 뿌리 없이 행하는 수행은 수행이라 말하기 힘들 것이다. 나의 의지, 나의 깊은 생각이 곧 수행의 본질이며 수행의 생명력이라면 그것의 부재로부터 진정한 수행의 출발은 기대할 수 없다. 

  

누군가 수행을 권유한다면 그것은 영혼의 잠을 깨우는 계기로서의 의미가 있다. 그 권유에 대한 순간적인 긍정에 끌려 시작한 수행은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계기를 맞이했다면 그동안 잠들었던 자아를 살펴나가야 한다. 내 영혼이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잠든 영혼을 깨워나가는 과정을 자신의 힘으로 고스란히 일궈내지 못한다면 수행의 길은 먼 인연이 될 뿐이다. 수행자의 옷을 입고 수행의 공간 속에 있어도 그 과정을 인식하지 못한 이에게 그 외적인 조건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미약한 뿌리지만 그리고 보잘 것 없는 내면의 힘이지만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작은 의지는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겉으로 보기 좋은 수행의 꽃은 언젠가는 바람에 날아가게 된다. 내면의 성찰 없는 외면수습은 결국 자신을 수행의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수행에 있어 심심유오는 시작임과 동시에 지속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뿌리를 성장케 하는 귀하고 아름다운 주체적 사유의 가치가 수행을 지속하게 하고 자신을 수행의 궤도 위에 늘 임하게 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짧은 말이지만 시작은 참으로 많은 의미를 가진다. 시작은 어떤 일의 첫 출발인데, 그 출발이 진정한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시작하는 이의 자발성과 주체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심심유오가 수행의 시작이며 심심유오에 한 사람의 자발적 동기, 주체적 의지가 결여된다면 그것은 수행의 시작으로서의 심심유오가 아닌 것이다. 또한 시작은 다음 단계의 전제이면서 그것이 지속하는 가운데 다음 단계가 진행된다. 시작 속에 뿌리내렸던 목적의식과 자발성과 주체성이 과정의 끝까지 함께하기 때문이다.

 

심심유오는 결코 그냥 주어지는 수행의 시작이 아니었다. 시작이 가진 그 큰 의미의 무게를 두고 볼 때 심우도 속 동자의 심심유오는 평온한 모습 속에서 보이지 않는 내면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직 자신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하지만 하늘이 내려준 그 영혼의 힘으로써 말이다.  

 

글 : 대순진리회 연구위원 김대현     

 


천상 (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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