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진리회의 종통(宗統) 2 - 종통계승

기획할방 (신선) 2018 夏



Ⅲ. 종통계승
 1. 상제님의 종통 공사

 
 1) 대두목 공사
 
  종통은 상제님께서 이미 정하신 천부적인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01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종통의 천부적인 성격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대두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혀주셨습니다.
 
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 도통하는 방법만 일러 주면 되려니와 도통될 때에는 유 불 선의 도통신들이 모두 모여 각자가 심신으로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어찌 내가 홀로 도통을 맡아 행하리오.02
 
  위 상제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대두목이 상제님께서 보내신 도통줄을 받으신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행하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 바로 신봉어인(神封於人), 즉 인간을 개조하여 지상신선을 실현하는 도통이기에,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셨다고 하심은 결국 상제님 공사를 계승하여 인간이 도통진경에 이를 수 있는 진법과 대도를 세우는 종통계승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도통의 법방인 진법과 이것이 전해지는 사사상전(師師相傳)의 연운 역시 상제님께서 직접 열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종통계승자인 대두목을 통해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도통줄을 받은 대두목에게 도통줄, 즉 진법을 사사상전으로 전수받아 심신을 닦으면 도통될 때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두목은 대도를 창도하고 진법을 완성하며 그 진법을 열어서 많은 이들이 도통의 길을 가도록 하는 존재입니다. 이 대두목의 천부적인 권위를 상제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공사로써 정하십니다.
 
상제께서 동곡에 머물고 계실 때 교운을 펴시니라. 종도 아홉 사람을 벌여 앉히고 갑칠에게 푸른 대(竹)나무를 마음대로 잘라 오게 명하셨도다. 갑칠이 잘라 온 대가 모두 열 마디인지라. 그중 한 마디를 끊고 가라사대 “이 한 마디는 두목이니 두목은 마음먹은 대로 왕래하고 유력할 것이며 남은 아홉 마디는 수교자의 수이니라.” 그리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하늘에 별이 몇이나 나타났는가 보라” 하셨도다. 갑칠이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나 복판이 열려서 그 사이에 별 아홉이 반짝입니다”고 아뢰니라. 상제께서 “그것은 수교자의 수에 응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03
 
  상제님께서 대나무의 열 마디 중 한 마디를 끊어 두목이라 하시며 두목은 마음먹은 대로 왕래 유력한다고 하시고 나머지 아홉 마디를 수교자(受敎者)의 수라고 하신 것은 두목과 수교자를 구분하신 것입니다. 즉 도통줄을 받는 대두목은 생사를 초월하여 인계(人界)와 신계(神界)를 자유자재로 왕래하는 존재로 천부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으며, 상제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종도[수교자(受敎者)]들과는 완전히 구분되기에 이들 중에는 대두목이 없음을 천지에 선포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상제님께서는 화천하시기 전 종도 누구에게도 종통계승자인 대두목으로 임명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대두목이 판밖에 있음을 암시하셨습니다. “대범 판안에 있는 법을 써서 일하면 세상 사람의 이목의 저해가 있을 터이니 판 밖에서 일하는 것이 완전하리라”04고 이르신 것입니다. 도전님께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훈시하셨습니다.
 
“나의 일은 판밖에 있다”라는 상제님 말씀이 있다. 도주 옥황상제님은 상제님 재세 시에는 곁에 안 계셨다. 아예 만나신 적이 없으셨다. 그때 직접적으로 공사보실 때 따라 다녔던 김형렬, 문공신, 박공우 등 24종도 중에 속하지 않으셨다.05
 
  이상에서 본다면 대두목 공사는 판밖에서 도통줄을 받아 진법을 세우고 또한 이 진법을 계승하는 종통계승자에 대한 공사입니다. 도주님께서는 판밖에서 계시로써 상제님의 뜻을 계승하여 진법을 세우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종통계승자인 대두목이십니다. 도전님 역시 도주님이 펼쳐 놓으신 도를 받으셔서 직접 유명(遺命)으로 종통을 받으셨기에 종통계승자인 대두목이신 것입니다. 도주(道主)님은 ‘도의 주인’이시기에 대두목이시며, 도전(都典)님은 ‘법[도]을 이끄시는 분[영도자(嶺導者)]’이기에 대두목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도주님, 도전님 모두 마음먹은 대로 왕래 유력하시는 것입니다.
 

2) 삼천(三遷)의 이치
 
어느 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 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마음을 게을리 말지어다.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고 이르셨도다.06
 
  상제님의 이 말씀은 상제님의 대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삼천, 즉 삼변(三變)이 필요하니 도통을 구하는 이는 마음을 게을리하지 말고 부지런히 수도하라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성도(成道)는 상제님 홀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삼천에 의해 이루어짐을 말씀하신 것으로 결국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라는 말씀의 뜻은 상제님-도주님-도전님의 종통계승에 대한 것입니다.
  난법자들은 삼천을 종통이 세 번 옮겨진 것으로 해석하여 종통계승자가 한 사람 더 있다고 주장합니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것은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상제님께서는 인세에 ‘있는 말’로 공사를 보셨습니다. “모든 일을 있는 말로 만들면 아무리 천지가 부수려고 할지라도 부수지 못할 것이고 없는 말로 꾸미면 부서질 때 여지가 없나니라”07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삼천이라는 말은 옛날부터 많이 쓰이던 ‘있는 말’이며 그 뜻도 명확합니다.
  우리에게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고사에서 비롯된 사용례가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전한(前漢) 말의 학자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烈女傳)』에 나옵니다. 여기서 삼천의 의미는 맹자의 어머니가 집을 옮긴 횟수가 아니라 맹자가 살았던 공동묘지, 시장, 글방의 세 장소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 중국과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삼천(三遷)이라는 말은 옮긴 횟수나 변화된 횟수가 3번이라는 뜻이 아니라 거친 과정의 수가 3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삼천과 동일한 말이 삼변(三變)인데 삼변 역시 삼천과 동일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주역의 점사를 뽑는 과정에서 일변(一變), 이변(二變), 삼변(三變)이라는 말이 고대부터 사용되었는데 하나의 효(爻)를 결정하기 위해 세 번의 조작으로 시초의 숫자를 결정하는 것을 지칭했습니다.08 즉 한 개의 효(爻)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전부 세 번의 조작을 통해 세 숫자를 결정하여야 했는데 이 조작 자체를 일변(一變), 이변(二變), 삼변(三變)으로 부른 것입니다. 결국, 고사나 주역에서도 나타나듯 동양에서 천(遷)과 변(變)은 어떤 사물(事物)이 결정, 완성되기 위해 거치는 세 번의 과정을 주로 의미했습니다.
  이러한 이치는 절후와 철의 원리에서도 나타나는데 후(候)가 3번 모이면 한 절후(節候)가 되며 절후가 음양으로 한 달을 이룬 후 달[月]이 3번 모이면 한철이 되는 것입니다. 『채지가』에서 ‘천하절후 삼변’한다는 것도 이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치는 시학공부에서도 나타나는데 초강이 3번 모여 합강이 이루어지고 합강이 3번 모여 봉강이 이루어지는 원리입니다. 도전님께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5일을 1후(侯)라 하고, 3후(侯)면 보름이라 하니 이것이 한 절후다. 절후가 음과 양으로 한 달을 이룬다. 한 달이 세 개 모여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이 되고 1년이 되는 것이다. 1년에는 72후가 있고 24절후가 있고 12달이 있다.09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넓게는 동아시아, 좁게는 한국에서 오랜 옛날부터 삼천이 변화가 세 번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 과정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삼천은 상제님에서 도주님으로의 일천(一遷), 도주님에서 도전님으로의 이천(二遷), 도전님에서 누군가로의 삼천(三遷)의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상제님이 일천(一遷), 도주님이 이천(二遷), 도전님이 삼천(三遷)을 맡으셨다는 의미이며, 세 분으로 종통이 ‘완결’되며 도가 ‘완성’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삼천은 도주님, 도전님 이외에 더 이상의 종통계승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라는 상제님 말씀은 상제님-도주님-도전님 종통의 삼천으로 성도(成道)를 할 수 있는 수도의 체계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 외의 누군가에게 다시 종통이 계승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을 통해 완성된 신도(神道)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종단사의 관점에서 보면, 무극도의 명칭을 도주님께서 태극도로 바꾸시고 태극도의 명칭을 도전님께서 대순진리회로 바꾸신 것을 뜻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삼천의 이치는 결국 무극도, 태극도, 대순진리회로 변천한 종단 명칭의 삼변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삼천의 이치는 또한 도가 변화됨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도의 변화는 도의 모든 것이 다 변화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바뀌는 것이 있고, 바뀌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일 년 중 사계절의 변화를 겪지만, 4계절 변화의 이치 그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외형적인 사람의 모습이 변하는 것이지 유전인자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우리는 보통 체(體)와 용(用)의 관계로써 설명합니다. 도가 변화한다고 말할 때는 용을 의미하는 것이지, 도의 체가 변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상제님이 선포하시고 도주님께서 완성하시고 도전님이 운용하시는 도법은 우주 생성 변화의 법칙과 이에 부합하는 이법으로서 이미 천지에 확증된 완전무결한 진법인 것입니다. 특히 도법의 중요한 부분인 신위(神位)는 한 번도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변할 수도 없고 변화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도의 원리는 본래 영원한 것입니다. 변화한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의 공사를 인간으로서 어찌 함부로 잴 수 있고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위는 어느 누구도 바꾸거나 고칠 수 없는 천부적으로 정해진 것으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입니다. 이에 대해서 도전님은 다음과 같이 훈시하셨습니다.
 
도장에는 신앙의 대상과 여러 신명을 모시고 있는데, 상제님께서 정하신 법을 도주님께서 세우신 것이다. 이것이 정해진 도법이다. 그 법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우리의 제도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제도, 법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상제님, 도주님께서 정하신 법이다. … 도주님의 법은 상제님께서 전하신 법을 받들어 만드신 것이고, 도주님께서 짜놓으신 법을 받들어 하는 것이 나(도전님)의 법이다. 나(도전님)의 법은 상제님, 도주님의 법이다. 이것을 어기는 자는 도인이 아니라 난동자이다.10
 
2. 도주님의 종통계승 


1) 법리적 정통성의 확립
 
  도전님께서는 “구천상제(九天上帝)님의 계시를 받으신 도주(道主)님께서 종통을 세우셨다”, “본도의 연원(淵源)은 상제님의 계시(봉서)를 받으셔서 종통을 세우신 도주님으로부터 이어 내려왔다”11라고 훈시하셨습니다. ‘종통을 세우신’이라고 할 때 ‘세우다’는 ‘이룩하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도주님의 종통계승은 단순히 전수받음을 초월하여 무엇인가를 완성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종통을 세우신’이라고 하신 훈시를 통해 우리는 상제님의 유지를 계승하여 도주님께서 세우시고 완성하신 무언가가 대순진리회의 종통계승의 핵심적 내용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도주님께서는 무엇을 세우셨을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도주님의 종통계승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헌』과  『요람』에는 도주님의 종통계승이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연원(淵源)은 강증산(姜甑山) 상제(上帝)의 대순(大巡)하신 유의(遺意)의 종통(宗統)을 계승(繼承)한 조정산(趙鼎山) 도주(道主)의 연원(淵源)이라 한다.12
 
 
대순(大巡)하신 유지(遺志)를 계승(繼承)하여 오십년 공부 종필(五十年工夫終畢)로써 전(傳)하신 조정산 도주(趙鼎山道主) ….13
 
  여기서 우리는 도주님께서 상제님으로부터 이어받으신 것이 대순하신 뜻[遺意, 遺志]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순은 삼계대순 개벽공사를 뜻하므로14 『대순지침』의 ‘상제님의 계시(봉서)를 받으셔서’15라는 것은 도주님께서 ‘상제님으로부터 삼계대순 개벽공사의 내용, 계획, 원리를 계시와 봉서를 통해 받으셔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도주님은 상제님으로부터 아직 유형화되지 않은 법, 즉 삼계대순 개벽공사의 유지를 받으신 것입니다.
  도주님께서 상제님의 뜻을 받아 법을 만드셨습니다. 도전님께서는 ‘우리의 법은 상제님의 뜻을 도주님께서 짜 놓으신 것’, ‘도주님의 법은 상제님의 뜻을 받들어서 만든 것’16이라 하셔서 이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결국, 도주님께서 상제님의 뜻을 받으셔서 세우신 것은 법이며, 따라서 종통은 이것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도주님의 교리 정립과 의례 확립을 통해 법, 곧 법리의 확립이라는 도주님 종통계승의 의미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① 교리의 정립
  상제님의 종통을 계승하신 도주님께서는 을축(乙丑, 1925)년에 전북 구태인에 무극도를 창도하셨습니다. 이때 상제님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로 봉안하고 종지 및 신조와 목적을 정하셨습니다.17 상제님께서 공사하신 진의(眞意)와 그 유지(遺志)를 진리체계로 밝히고 이에 따른 이법을 정한 것인데, 이를 교리라 합니다. 우리는 도주님께서 밝히신 종지인 음양합덕(陰陽合德)·신인조화(神人調化)·해원상생(解冤相生)·도통진경(道通眞境)에 상제님께서 행하신 천지공사의 대의가 함축되어 있어 다른 어떠한 말로 상제님이 펼치신 대도의 참뜻을 대신할 수 없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도전님께서는 이를 계승하시어 ‘대순진리’라 하셨습니다.
  도주님께서 세우신 교리체계에 의해 상제님의 천지공사는 종도들의 기억이 아닌, 체계적인 이론으로 정립되어 신앙과 수행의 지침으로 널리 알려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으며 오늘날에 어떠한 종교나 사상에 견주어도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뛰어납니다. 이것은 도주님의 종통계승이 지니는 법리적 정통성 확립의 의미를 여실히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② 의례의 확립
  의례(儀禮)란 의식(儀式)과 예절(禮節)의 준말로, 각종 단체에서 주관하는 특정 의식이나 행사를 하는 예법 절차입니다. 대순진리회 의례는 신앙의 대상인 상제님과 영대와 봉강전 등에 봉안된 천지 대신명들에 대한 의식이지만, 또한 도인들의 목적인 도통을 달성하는 법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순진리회에서는 제 신위(神位)에 대한 봉심, 주문 봉송의 기도, 치성, 월성, 공부, 수련 등의 의례를 도법(道法)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대순진리회 의식행사 및 준칙 등은 모두 도주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특히 도주님께서는 시학·시법 공부 등의 법방을 상세히 정하셨으며, 공부의 엄중함을 교화하셨습니다.18 도주님 50년 공부의 결정체인 이 공부 법방은 개인의 도통을 완성시키고 삼계를 성공하게 하는 진법(眞法)으로 천명되었습니다. 도주님께서는 이러한 도법을 50년 공부로써 확고히 정하셨고 이를 실행하시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러한 법방을 “행하여 오던 대로 잘 행해 나가라”19고 엄명하심으로써 수도인들이 귀의할 바로 정해주셨습니다. 도주님의 유명으로 종통을 계승하신 도전님께서도 종단의 전반적인 기구를 개편하시고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면서 모든 의례를 도주님의 진법에 의해 설정하셨습니다.
 

2) 천부적 신성성
 
  종통을 이해함에 있어 법리적 정통성이라는 부분을 도외시하는 것은 진리를 왜곡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종통계승자를 정한 천부적 도수 역시 종교 법리와 상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도주님의 행적뿐만 아니라 선포하신 법리까지도 종통계승의 천부적 상징과 이치로써 부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숨겨진 천부적 이치를 밝혀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상제님께서는 “대인의 일은 마땅히 폭을 잡기 어려워야 하나니 만일 폭을 잡힌다면 어찌 범상함을 면하리오”20라고 하시어 범상한 사람은 상제님의 일을 알 수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도전님께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조금 안다고 마음대로 해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얘기하지만 도란 어려운 것이다. 그저 모르고서도 따라가면 된다. 조금 안다고 잘못 얘기하면 죄를 짓게 된다. 몰라도 모르는 대로 믿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잘못하면 자기도 죄짓고 딴 사람도 죄인을 만들게 된다. 상제님께서는 “시속에 병신이 육갑한다는 말은 서투른 글자나 배웠다고 손가락을 꼽작이며 아는 체한다는 말이니 이런 자는 장차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고 하셨다. 알려면 똑바로 알아야 하고, 모르면 배우고 나가야 한다.21
 
  여기서 우리는 대순진리를 깨달으신 분만이 이 천부적 이치를 온전히 밝혀낼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종통을 계승하신 도주님과 도전님만이 천부적인 이치를 온전히 드러내실 수 있는 것입니다.
  기존 종교에서도 경전의 자구 해석 하나에 따라 종파가 나누어졌으며 종파에 따라 전혀 다른 교리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전무후무(前無後無)하고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금불문 고불문(今不聞 古不聞)의 진리를 수록한 『전경』의 해석은 더더구나 조금 안다고 아무나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구천상제님의 천지공사의 깊은 뜻을 어찌 인간이 제대로 알 수 있으며, 더군다나 함부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도전님께서도 『전경』의 한문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으로 함부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신 바 있습니다. 『전경』에 수록된 양위 상제님의 공사는 종통을 계승하신 도전님의 가르침에 따라 해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순지침』과 훈시 말씀을 근거로 하여 종통계승의 천부적 이치를 살펴보아야 이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주님이 천부적인 종통계승자임을 도전님께서는 『대순지침』과 훈시를 통해 다음과 같은 여러 천부적인 이치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① ‘十二月二十六日再生身’, 상제님의 부절(符節)
  상제님께서는 “나의 말은 늘지도 줄지도 않고 여합부절(如合符節)이니라”22고 하셨습니다. 부절(符節)이란 돌이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든 신표(信標)를 둘로 갈라 나누어서 가지고 있다가 후일 서로 맞추어 봄으로써 증거로 삼던 것입니다. 그래서 둘로 가른 부분이 꼭 맞는 것은 한 쌍만이 존재하게 되고 또 그 한 쌍을 합치면 원래의 완전한 신표가 됩니다. 그러므로 상제님의 말씀은 당신의 공사가 부절을 맞추는 것처럼 조그마한 오차도 없이 정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제님께서는 당신의 종통을 계승할 진주(眞主)의 존재를 공사와 도수로 정하셨기에, 진주가 지닌 신표에 꼭 맞는 부절을 공사와 도수로 남겨 놓으셨습니다. 물리적인 부절은 화천하신 후에는 전해지기 어렵기에 비결로써 부절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비결은 짝을 맞추어 볼 때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으므로 그 누구도 어설프게 진주 흉내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도전님께서는 도주님의 종통계승이 ‘여합부절한 천부적 종통계승’이라고 밝히시면서 상제님께서 전하신 비결에 대해 밝혀주셨습니다.
『전경』에 ‘12월 26일 재생신(再生身)’23이라 하신 것은 12월 4일로 1년 운회의 만도(滿度)를 채우실 도주님의 탄강을 뜻하심입니다. 이것을 여합부절(如合符節)한 천부적 종통계승이라고 합니다.24
이 훈시는 천부적 종통계승의 부절에 해당하는 비결이 ‘十二月二十六日再生身’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으로, 상제님의 이 부절이 도주님의 부절이라 할 수 있는 12월 4일 탄강[十二月四日生]과 꼭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12월 26일과 12월 4일이 정확히 하나로 맞추어진다고 하신 것일까요?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훈시를 해 주셨습니다.
 
‘十二月二十六日 再生身’이니 여기에 4가 들어가면 30일이다. 도주님께서 12월 4일에 탄강하셨으니, 12월 30일이 되어서 1년 12달이 꽉 찬다. 이것이 도이다.25
 
  26일에 4일생이면 4를 합쳐 30일로 꽉 차게 된다. … 1년 12달이 도이며, 도라는 것을 통하는 것이 도통이다. 12월하고 30일이 꽉 찬 것이 도다.26
  원래 부절은 하나의 물건을 둘로 나누어 하나씩 지니는 것인데, 도전님께서는 12월 26일과 12월 4일이 12월 30일, 즉 1년 운회의 만도를 둘로 나눈 것이기에 서로 꼭 맞는 신표가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제님께서 ‘1년 운회의 만도’, 즉 꽉 찬 1년 12달인 12월 30일을 종통계승의 신표로 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도전님께서는 12월 30일, 즉 꽉 찬 1년 12달이 도를 상징하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1년 12달, 12월 30일이 왜 도를 의미하는지는 도전님께서 다음과 같이 여러 차례 자세하게 밝혀주셨습니다.
 
진리라는 것은 우주 변화 과정의 기구(機構)이며 도(道)다. 생장염장(生長斂藏)의 변화 기구는 1년 12달이다. … 1년 12달이 도이며, 도라는 것을 통하는 것이 도통이다. 12월하고 30일이 꽉 찬 것이 도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이 전부 1년 12달에 있다.27
 
 
도는 음양이고 사상, 오행이며 1년, 12월, 360일이다. 모든 조화 · 법칙은 음양에서 나온다. 음양의 원리에 의해 1년 12월에 사철이 다 들어가 있으며, 또 여기에 72후(侯)가 들어있어 모든 조화가 그 안에 다 있다. 음양의 이치로 변화하니 그것이 도이다. … 5일을 1후(侯)라 하고 후가 셋이 모인 3후를 1절후(節侯)라 하니, 360일이 72후이고 72후가 24절후이다. 24절후가 1년이니 72후가 1년이다. 이것이 우리 도의 법이다. 공부도 이것을 가지고 한다.28
 
 
12월은 1년의 끝 달이므로 12달이 다 들어있어 도를 뜻한다. 1 · 2 · 3월은 봄, 4 · 5 · 6월은 여름, 7 · 8 · 9월은 가을, 10 · 11 · 12월은 겨울이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가 소절(小節)이고, 그게 셋이 모이면 15일이고 보름이며 1절후이다. 15일이 두 개 모이면 한 달이다. 날과 달 모두가 음양이다. 기도를 모실 때도 음일(陰日), 양일(陽日) 가려서 기도주와 태을주를 바꾸어 한다. 5일이 일 주일이고 주일기도를 한다. 이것이 3번 모이면 일 절후, 절후가 2번 모이면 한 달, 달이 3번 모이면 한 철이다. 이런 모든 것이 변화이고 조화이며, 이 세상 모든 변화와 조화가 도(道)이니 12월은 도(道)다. … 이것을 법이라 하고, 진리라 하고, 도라 하는 것이다.29  

  그런데 상제님께서는 1년 12월을 모두 채우기 위한 날짜로 왜 4일을 지목하셨을까요? 이를테면 ‘12월 25일 재생신’이라고 하셔서 채우기 위한 날짜를 12월 5일로 지목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음의 도전님 훈시에서 우리는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주님 탄강일은 12월 4일이다. 12월은 1년의 끝 달이므로 12달이 다 들어있어 도를 뜻한다. … 4일은 춘하추동의 사철을 의미한다.30
 
 
증산(甑山), 정산(鼎山)님의 도가 음양의 도다. 정산님은 12월 4일에 강세하셨다. 12월은 사철로 도를 뜻하며, 4일의 4는 사철을 의미하니 12는 곧 4이다.31
 
  ‘4일의 4는 춘하추동의 사철’이라는 도전님의 훈시에 따르면, 도주님의 탄강일이 4일인 것은 1년이 봄·여름·가을·겨울의 사철로 완성이 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상제님께서 12월 26일이라 하심은, 모자라는 4일을 더 채워야만 12월로 표상되는 도가 사(四)철로 완성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도전님께서는 4가 곧 4철이고 따라서 도를 상징하는 12월이 곧 4라고까지 하셨습니다. 12와 4가 모두 도를 의미하니 도의 주인이신 도주님의 탄강일이 12월 4일이어야 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상제님께서도 ‘十二月二十六日再生身’이라는 부절로 상제님의 공사를 이어 도법을 완성하시는 도주님이 12월 4일 태생임을 천지에 확증하신 것입니다.
  도전님께서는 ‘12월 4일 탄강’이 지니는 천부적 신성성을 상제님의 공사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부터 내려오는 비결(秘決)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훈시로써 밝혀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비결에 ‘수종백토주청림(須從白兎走靑林)’32이란 말이 있다. 즉 흰 토끼를 따라 청림을 좇으라는 이야기이다. 옛날부터 작은 달(29일)은 백토끼, 큰 달(30일)은 옥토끼라 했다. 그래도 잘 모르니까 ‘옥토는 만월이오, 백토는 소월(小月)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백토주(白兎走)는 소월주(小月走)이니 조(趙)가 되고, 청림(靑林)은 십이월(十二月)을 말한다. 초나흘 달은 초승달이 뜨니 조그만 달 곧 소월(小月)이다. 백토는 소월이고 소월은 곧 4일이 된다. 이렇게 성씨, 지명에서부터 강세하신 날까지 다 맞아야 된다. 즉 조씨(趙氏)에 정산(鼎山)이셔야 되고 탄강하신 날까지 맞아야 된다. 이것을 법, 진리라고 하고, 여합부절(如合不節)하며 빈틈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33
 
  이상에서 본다면 결국 ‘여합부절한 천부적 종통계승’이라는 도전님의 말씀은 ‘대순진리회의 종통’에는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는 ‘천부적인 신성성’이 깃들어 있다는 뜻인 것입니다.
  
② 15진주와 봉천명(奉天命)
  도전님께서는 도주님께서 봉천명하시는 천수가 15세로 진주 수이기에 진인, 즉 종통계승자임을 밝혀주셨습니다. 도주님의 조부, 부친과 숙부들은 배일사상이 강했습니다. 한일합방이 결정단계에 이르자 도주님께서는 15세가 되시던 해인 1909년에 부친과 함께 고국을 떠나 만주 봉천(奉天)에 가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해 4월 28일, 도주님께서는 창원역에서 신의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전 가족과 함께 망명길에 오르셨습니다.
  바로 이날 상제님께서는 김보경(金甫京, 1861~1934)과 이치복(李致福, 1860∼1944)을 비롯한 몇몇 종도를 앞세우시고 대전 들판에 나가셨습니다. 한참을 서성이시면서 “이제 올 때가 되었는데”라고 하시다가, 마침 도주님께서 타신 기차가 오는 것을 보시고 “이제 나의 일을 다 이루었도다. 남아(男兒) 15세면 호패를 찬다 하느니 무슨 일을 못하리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34 종단에서는 도주님께서 기유(1909)년 15세 시, 4월 28일에 천명(天命)을 받드신 것을 기념하여 봉천명치성을 모시고 있습니다.
  도주님께서는 15세에 만주 봉천으로 망명하시어 구국제세의 뜻을 정하시고 입산 공부를 시작하셨습니다. 도전님께서는 이 이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해에 도주님께서 만주 봉천(奉天)으로 가셨다. 그해 도주님 천수(天壽) 15세셨다. 15는 진주(眞主)라 한다. 『전경』에도 진주노름이란 말이 있다. 10을 무대라고 하고 무대는 수 중에 제일 높은 수이다. 진주노름에서 무대를 잡으면 아무도 못 먹는다고 한다. 무대는 무극대도(無極大道)이다. 거기서 참 주인이심을 알 수 있다. 봉천(奉天)이니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받든다.35
 
  여기에서 우리는 『전경』의 행록과 교법 편에 나타나는 가구판 노름, 즉 진주노름의 이치가 15세 시의 봉천명과 관련됨을 알 수 있습니다. 『전경』 교법 3장 36절에는 “천하의 대세가 가구판 노름과 같으니 같은 끝수에 말수가 먹느니라”는 상제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가구판 노름이란 투전패 세 장의 합을 15로 맞춘 사람이 이기는 노름입니다. 이러한 가구판 노름의 원리는 주역(周易)의 근원으로 말해지는 낙서(洛書)의 수리와 일치합니다. 낙서의 수리는 중앙에 5를 두고 1부터 9까지의 수가 가로, 세로, 대각선 세 수의 합이 15가 되도록 배열되는 원리인데 그림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 배열입니다.
 
 
  이 수리는 역학적으로 1·6은 수(水), 2·7은 화(火), 4·9는 금(金), 3·8은 목(木), 5·10은 토(土)로 이해되어 수(水) 화(火) 금(金) 목(木) 토(土) 오행(五行)의 상극(相剋)으로 풀이됩니다. 즉 수극화(水克火), 화극금(火克金), 금극목(金克木), 목극토(木克土), 토극수(土克水)의 이치입니다. 따라서 낙서(洛書)의 수리는 상극을 상징하며 바로 선천 우주의 이치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실제 하늘 360주천(周天)을 15로 나누면 24가 되고 이것은 곧 24방위로서 24방위는 매 15°마다 그 자리가 교체되며, 또한 땅의 24절기도 15일을 기준으로 서로 그 자리를 교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은 15수리를 근본으로 하여 각각 24방위와 24절기를 운행시킴으로써 만물이 생장염장할 수 있도록 하는 시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만물은 15라는 수리를 바탕으로 생성 변화 발전을 일으키고 있는데, 영대의 신위(神位)가 15신위인 것과 영대에서 모시는 배례 횟수가 총 15배인 것도 바로 이런 우주의 원리에 응함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15는 우주의 운행 그 자체를 의미하는 수리라는 점에서 곧 도(道)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다면 가구판은 선천(先天), 즉 현하의 우주를 의미하고 가구판 노름에서 가장 높은 패를 가진 이는 바로 선천 천하의 대세를 잡아 새로운 판[道]을 여는 진주(眞主)를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결국, 15가 주인이 되는 가구판 노름의 이치는 진법을 완성하시는 분이 천지대세를 잡는, 즉 봉천명하는 천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도주님 15세 시의 봉천명을 단순하게 이해하면 진주의 수가 지니는 천부적 신성성과 법리적 정통성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최제우가 보국안민(輔國安民)과 광제창생(匡濟蒼生)의 뜻을 품고 공부를 시작했던 나이는 30여 세였습니다. 그에 비해 도주님께서 15세 시에 봉천명을 하시고 입산수도를 시작하셨음은 그 어떤 누구도 갖지 못하고 이르지 못한 성의(誠意)와 기연(奇緣)을 타고나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한 치의 빈틈없는 천지공사에 따라 동양 천지의 격변이 일어남으로써 도주님께서는 정확히 15세에 만주 봉천으로 망명하셨고 막 성인이 되는 천수에 도력으로 구국제세(救國濟世)할 뜻을 정하시는 것입니다. 봉천(奉天)으로의 봉천명이 천지도수에 따른 기이한 세계사적 변화와 관련되어 있음에서 우리는 15세 봉천명의 천부적 신성성을 알 수 있고 도주님이 세우신 구세제민의 뜻이 상제님이 최수운에게 내리신 명과 일치함에서 우리는 그 법리적 정통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③ 23세 시의 감오득도(感悟得道)
  만주 봉천으로 가신 도주님께서는 고국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큰 혼란에 빠져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소용돌이치는 온 세상과 백성들을 구할 수 없음을 아시고, 도력으로써 뜻을 이루시고자 입산 공부에 진력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9년 후인 1917년에 23세의 나이로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감오득도(感悟得道)하셨습니다. 종단에서는 대도의 참뜻인 대순진리에 감오득도하신 이날을 기념하여 감오득도치성을 모시고 있습니다.
  도전님께서는 도주님이 천부적인 종통계승자임을 알 수 있는 이치로 도주님 23세 시의 감오득도와 태을주(太乙呪)의 본령합리(本領合理)를 말씀하셨습니다.36 도주님의 대순진리 감오득도는 1917년(丁巳년) 2월 10일로 도주님 천수 23세 시입니다. 태을주도 23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태을주에 대해 상제님께서도 ‘하늘에서 으뜸가는 임금’으로 “오만년 동안 동리 동리 각 학교마다 외우리라”고 하셨습니다.37 우리는 이 말씀으로 태을주가 후천의 이법을 대표하는 주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태을주는 대순진리회의 모든 공부와 의례에 빠지지 않는 가장 중요한 주문이며 도법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도주님의 23세 시 대순진리 감오득도와 도법을 대표하는 주문으로서의 태을주 23자가 수리로 일치하는 본령합리는 도주님께서 도를 세우시어 진법을 완성하는 분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천부적 신성성이 법리적 정통성과 부합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④ 오십년 공부(五十年 工夫)
  상제님께서는 “내가 평천하 할 터이니 너희는 치천하 하라. 치천하는 五十년 공부이니라”38고 하시며 종도들에게 치천하 50년 공부를 명하셨습니다.또한, 다음과 같이 새 기틀을 여는 도수로써 오십년 공부를 짜놓으십니다.
 
상제께서 六월 어느 날 천지공사를 마치신 후 “포교 오십년 공부종필(布敎五十年工夫終畢)”이라 쓰신 종이를 불사르시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윤(伊尹)이 오십이 지사십구년지비(五十而知四十九年之非)를 깨닫고 성탕(成湯)을 도와 대업을 이루었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써서 물샐틈없이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하셨도다.39
 
 
또 하루는 공사를 행하시고 오주(五呪)와 글을 쓰시니 이러하도다.
天門地理 風雲造化 八門遁甲 六丁六甲 智慧勇力
道通天地報恩
聖師
醫統  慶州龍潭
无極神  大道德奉天命奉神敎大先生前如律令
           審行先知後覺元亨利貞布敎五十年工夫
40
 
  이상의 ‘치천하(治天下)는 오십년공부’, ‘포교 오십년 공부종필(布敎五十年工夫終畢)’, ‘布敎五十年工夫’ 등에서 보듯이 새 기틀이 열리는 오십년 공부는 치천하, 포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상제님의 평천하 공사를 계승하여 오십년 공부로 상제님의 도를 포교하여 치천하 하는 계승자가 천부적인 도수로 정해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도주님은 이 천부적인 포교 오십년 공부(五十年 工夫)의 도수가 당신에 대한 것임을 화천하시기 직전 직접 밝혀주셨습니다.
 
도주께서 정유년 十一월 二十一일 자시부터 무술년 三월 三일까지 도장에서 불면 불휴하고 백일 도수를 마치시니라. 五일에 심히 괴로워하시므로 한의사와 양의사를 불러왔으되 “때가 늦었도다”고 이르시니라. 도주께서 이튿날 미시에 간부 전원을 문밖에 시립케 한 후 도전 박한경을 가까이 하고 도전의 머리에 손을 얹고 도의 운영 전반을 맡도록 분부를 내리고 “오십년 공부 종필(五十年工夫終畢)이며 지기 금지 사월래(至氣今至四月來)가 금년이다. 나는 간다. 내가 없다고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행하여 오던 대로 잘 행해 나가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문밖을 향하여 “도적놈”을 세 번 부르시더니 화천하시니라. 무술년 三월 六일 미시요 양력으로 一九五八년 四월 二十四일이오. 수는 六十四세로다.41
 
  결국, 치천하와 포교(布敎) 오십년 공부란 오십년 공부로 도주님이 상제님이 펼치신 평천하의 도로 치천하 하고 상제님의 일을 사람들에게 포교, 즉 가르쳐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오십년 공부는 단순한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법리적 정통성이 세워지는 기간임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오십년 공부는 도주님만이 밟으실 수 있는 지극정성으로 가능했습니다. 즉 천부적으로 정해져 있던 도주님만이 이를 행해 내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전경』의 교운 2장 대부분이 도주님의 오십년 공부에 관한 것으로 도주님께서 15세 시부터 64세 시까지 50년 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 오로지 지극한 정성으로 상제님의 뜻을 받들어 천지도수를 풀어나가는 공부를 행하신 내용입니다. 길게는 9년, 짧게는 몇 주에 걸쳐 이루어진 도주님의 공부는 많은 경우 불면(不眠), 불식(不食), 불휴(不休)의 과정이었기에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정성을 요구하는 것임을 우리는 『전경』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도주님처럼 50년을 한결같은 뜻과 지극한 정성으로 온갖 고난을 이겨내며 상제님의 도수에 따른 공부로 진법을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 ‘오십년공부(五十年工夫)’의 천부적 신성성이 있는 것입니다.
  
⑤ 증산(甑山)·정산(鼎山) 양산도와 금산사의 이치
도주님이 천부적인 종통계승자임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상징은 금산사의 이치입니다. 금산사의 이치는 양산도의 이치로 솥과 시루의 이치이기도 합니다. 도전님께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밝혀 주셨습니다.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고 하심은 미륵불과 솥의 양산(兩山)의 진리(眞理)를 밝혀 주신 것이다.42
 
 
금산사도 진표율사가 용추(용소)를 숯으로 메우고 솥을 올려놓은 위에 미륵불을 봉안한 것은, 증산(甑山)ㆍ정산(鼎山)의 양산의 진리를 암시하여 도의 근원을 밝혀 놓은 것이다.43
 
  여기에서 우리는 미륵불이 상제님[甑山]을 뜻하고 솥(鼎)이 도주님[鼎山]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금산사의 미륵금불이 상제님을 뜻함은 상제님께서 강세하시기 전 이 미륵불에 30년간 계셨음과 스스로 미륵임을 밝히신 점, 그리고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후 천하지 대금산(天下之大金山) 모악산하(母岳山下)에 금불(金佛)이 능언(能言)하고 육장 금불(六丈金佛)이 화위 전녀(化爲全女)이라”44고 하셔서 미륵금불이 전녀(全女)를 합친 성씨인 강(姜)씨로 왔음을 암시하신 데서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대순진리에서 미륵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다음의 『전경』 구절을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상제께서 하루는 공우에게 말씀하시길 “동학 신자는 최 수운의 갱생을 기다리고, 불교 신자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예수 신자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나, 누구 한 사람만 오면 다 저의 스승이라 따르리라”고 하셨도다.45
 
 
… 궁을가(弓乙歌)에 “조선 강산(朝鮮江山) 명산(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 다시 난다”라 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라. 동학 신자 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하리라고 전하니 이는 대선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代先生)이로다.46
 
  위의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불교의 구세(救世)는 미륵 출세, 기독교의 구세는 예수 재림(再臨), 동학의 구세는 최수운 갱생(更生)입니다. 따라서 동학의 신자들이 최수운을 지칭하는 대선생(大先生)이란 명칭은 미륵, 재림 예수 등의 각 종교 구세주와 그 의미가 통합니다. 상제님께서는 이를 활용하셔서 ‘대선생(大先生)’이 ‘대선생(代先生)’이며 곧 자신임을 밝히셨습니다.
  이는 결국 각 종교의 구세주 대신 상제님께서 대신 오셨음을 밝히신 것으로 “누구 한 사람만 오면 다 저의 스승이라 따르리라”는 것은 결국 모든 사람들이 상제님을 믿고 따를 것임을 예시하신 것입니다. “내가 곧 미륵이다”라는 의미는 내가 곧 구세주라는 말씀인 것이며 미륵과 예수와 최수운을 대신해 구세주의 일을 하고자 이 땅에 오셨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미륵의 일을 하러 오셨기에 곧 미륵이라 하신 것이며 상제님 외에 따로 미륵이 오지 않을 것이란 말입니다. 따로 미륵이 온다면 예수나 최수운도 다시 와야 하는 것입니다.
  미륵이 시루의 이치로 인세에 오심은 금산사의 미륵이 솥 위에 있기에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제님께서 시루의 이치로 오심을 상제님의 생가가 시루산 아래 있고 상제님께서 스스로의 존호를 증산(甑山)이라 하신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루이신 상제님이 곧 미륵임은 금산사의 미륵이 솥 위에 있음으로써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솥 위에 얹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시루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훈시하셨습니다.
 
  크고 작은 호위불이 있는데, 큰 것은 증산, 작은 것은 정산이다. 솥 위에 올라가는 것은 시루밖에 없다. 솥을 걸고 시루를 얹으면 불을 때야 한다. 그래야 용사(用事)가 된다. 그래서 숯이 필요한 것이다. 금산사로 오라고 하신 것은 이것을 보고 깨닫고 그 진리로 들어오라고 하신 것이다. 금불 밑에 용소(龍沼) 못이 있는데 용이 아홉 마리가 있었기에 용소라고 한다.47
 
 
상제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강세하시기 전에 금산사 미륵불에 임하여 계셨다. 솥 위에 시루가 있는데 솥 위에 미륵불을 세우고, 좌우에 보호불을 세우고 또 그 옆에 작게 두 개 보호불을 더 세웠다. 그래서 출(出) 자 형상이니 양산(兩山)이고, 그게 증산, 정산이다. 상제님께서 화천하실 때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고 하신 말씀은 미륵금불을 보라고 한 것이 아니고 그 진리를 찾아서 오라는 말씀이다. 다른 데서는 모두 미륵금불에 계신 줄 안다. 그게 미륵을 따르라는 얘기지, 절에 오라는 얘기가 아니다.48
 
  솥은 불의 기운을 모아 물로 증기를 만들고 시루는 이 증기를 모아 떡을 익힙니다. 양(陽)의 기운으로 팽창과 성장을 의미하는 불은, 음(陰)의 기운으로 수축과 수렴을 의미하는 물과는 상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천의 역리(易理)인 수극화(水克火) 원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솥은 불을 모아 물을 증기로 만들고 시루는 이 증기를 모아 떡을 익힘으로써 물과 불 즉 음(陰)과 양(陽)을 조화시킵니다. 시루와 솥의 조화로 불과 물의 상극(相克)이 상생(相生)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솥 위에 미륵이 얹혀 있고 이 미륵을 중심으로 보호불을 포함하여 전체 불상이 5개로 출(出=山+山: 兩山) 자형을 이루는 금산사 미륵전은 시루(미륵)와 솥을 이용하여 불(숯)을 때고 물을 끓여 떡을 익히는 모양으로 선천 상극 세상이 증산(甑山), 정산(鼎山)의 양산도(兩山道)에 의해 후천 상생 세계로 개벽되어 우주가 완성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도전님께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훈시하셨습니다.
 
『전경』의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고 하신 상제님 말씀은 그 진리로 오라고 하신 것이니 잘 이해시켜야 한다. 금산사의 용추 못이 어떠한 자리이고 누가 미륵불을 봉안했는가를 알아야 한다. 솥을 걸고 그 위에 올릴 수 있는 것은 시루밖에 아무것도 없다. 존호가 증산(甑山), 정산(鼎山)이시기에 합치되는 것이다. 솥[鼎]과 시루[甑]가 되었다면 불을 때야 용사(用事)가 된다. 그냥 불을 때면 다 타버린다. 그러니 물이 또한 필요하다. 이러한 것이 진리인 것이다.49
 
 
상제님께서 인세(人世)에 계실 때 호가 증산(甑山), 도주님의 호는 정산(鼎山)이셨다. 시루 증(甑), 뫼 산(山), 솥 정(鼎), 뫼 산(山)이다. 시루는 솥 위에 얹혀야 조화가 나온다. 물도 있어야 하고 숯으로 불도 때야 하는데 용추 못은 물이고, 숯은 불이니 조화가 나온다. 금불의 양쪽에 보호불이 두 개씩 있는데,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다. 금불과 보호불, 그 옆의 조그만 불이 합쳐서 두 개의 뫼 산(山) 자, 즉 출(出) 자를 이룬다. 이것은 산(山)이 두 개 있는 형상으로 증산, 정산을 의미한다. 완연하다. 다른 사람은 모른다. 우리 아니면 모른다. 절에서 하는 설명을 들어보면, 후천은 미륵불의 시대이고 그때는 이와 같이 키가 커진다고 한다. 『전경』에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을 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진리, 이치를 보라는 말씀인 것이다.50
 
  『주역』의 괘상에 있는 정괘(鼎卦)도 정산(鼎山)이라는 도주님 존호의 천부적 신성성을 잘 보여줍니다. 리상(離上) 손하(巽下)의 정괘(鼎卦)는 화풍정(火風鼎)이라고도 하는데 주역 64괘 가운데 50번째에 해당합니다.51 정괘가 상징하는 바를 이해하려면 『주역』의 <서괘전(序卦傳)>을 통해 그 전 괘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52 정괘 앞의 괘는 49번째 혁괘(革卦)인데 『주역』의 <서괘전(序卦傳)>은 그 관계를 “井道不可不革 故受之以革 革物者莫若鼎 故受之以鼎”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물의 도(道)는 변혁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53 혁(革)으로써 받았고, 물건을 변혁함은 가마솥 만함이 없으므로 정(鼎)으로써 받았다”는 뜻입니다. 혁괘는 태상(兌上) 리하(離下)인데 태(兌)는 못이므로 물이고 리(離)는 불이므로 불 위에 물이 있는 모양으로 결국 물은 아래로, 불은 위로 나아가 서로 멸(滅)하니 혁(革)인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 상극인 물과 불을 통해 사물이 변혁되기 위해서는 이 둘을 서로 합해서 쓰임이 되면서도 서로 해치지 않아야 하는데 바로 여기에 솥, 즉 정(鼎)이 필요합니다. 상극인 물과 불을 상생으로 조화시키는 것이 바로 정(鼎)인 것입니다. 실제로 솥 안에 물을 넣고 아래에서 불을 지피면 수화가 상생하여 실로 다양한 사물의 변화를 이룰 수 있었기에 인류의 삶에서 솥은 필수적인 용기였습니다. 그러므로 『주역』은 “변혁하는 데에는 솥만한 것이 없다”고 하여 정괘를 길하며 형통하다(鼎, 元吉, 亨)고 풀이합니다. 
  상제님께서 현무경에 쓰신 “水生於火  故天下無相克之理”54와 이치안의 집에 쓰신 ‘고견 원려 왈지(高見遠慮曰智)’의 “水生於火 火生於水 金生於木 木生於金 其用可知然後 方可謂神人也”55의 글은 ‘水生於火, 火生於水’의 수화(水火) 상생(相生)을 쓸[用] 수 있어야 가히 신인(神人)이라 할 수 있으며 천하(天下)의 상극(相克)을 없앨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화(水火) 상생(相生)은 솥, 즉 정(鼎)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기에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도의 진법을 짜신 도주님이 정(鼎), 즉 솥의 이치로 오시는 것은 필연인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금산사의 미륵금불을 양산도(兩山道)라고 이름 지으시고 세속에 전해지는 양산도와 비유하곤 하셨습니다.56 시속에는 양산도 타령이라는 유명한 민요가 전해지는데, 그 후렴구 중에는 “에라 놓아라, 아니 못 놓겠네, 능지를 하여도 못 놓겠네, 에헤이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능지처참을 당해도 양산(兩山), 이 줄만큼은 절대 못 놓는다는 것인데, 그 양산이란 바로 시루와 솥인 증산(甑山)과 정산(鼎山)인 것입니다.
  이상에서 본다면 결국 상제님의 진리를 계승하실 분은 솥(鼎)과 양산(兩山)의 이치로 오셔야 합니다. 따라서 이에 부합하는 정산(鼎山)이라는 도주님의 존호는 종통계승이 천부적임을 말해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하지만 도주님께서 단순히 정산(鼎山)이라는 존호를 가지셨다는 이유만으로 천부적인 신성성을 부여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정산(鼎山)이라는 존호만으로 천부적인 신성성이 부여된다고 하면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호를 정산(鼎山)이라고 하면 천부적인 신성성을 가지게 됩니다.
  앞서 보았지만, 미륵의 이치가 시루의 이치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미륵이 얹혀 있는 솥입니다. 따라서 솥인 도주님에 의해서 상제님의 진면목과 진리가 온전히 드러나게 되어야만 도주님의 종통계승이 금산사의 이치와 부합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이치를 다음과 같이 밝혀주셨습니다.
 
상제께서 형렬(亨烈)의 집에 머무르고 계실 때 형렬이 집안이 가난하여 보리밥으로 상제를 공양하여 오던 차에 八월 추석절을 맞게 되어 쇠솥을 팔아서 공양코자 하는지라 상제께서 가라사대 “솥이 들썩이니 미륵불(彌勒佛)이 출세하리라”고 이르셨도다.57
 
  솥이 들썩이는 것은 솥 안의 물이 끓어 솥 위의 물건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양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즉 솥이 제 역할을 하여 솥 안의 물이 끓을 때야 솥 위에 있는 시루, 즉 미륵이 움직인다는 의미로써 솥과 시루의 이치를 모르면 이 말씀이 어떤 뜻인지 알 수 없습니다. 솥 안의 물이 끓어 솥이 들썩여야 시루가 제 기능을 하게 되는 것처럼 도주님[솥]에 의해 상제님[시루, 미륵]이 밝혀져 그 진리가 드러나게 됨을 예시하신 것입니다.
  결국, 상제님의 말씀은 미륵, 즉 상제님의 진리가 세상에 출현[출세(出世)]하게 되는 이치를 밝혀주신 것입니다. 실제로 오직 도주님만이 상제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정확히 깨달으시고 1925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로 봉안하실 수 있었으며 해원상생, 보은상생의 대순진리를 밝혀 상제님의 도덕을 펴셨습니다. 도주님[鼎山]의 50년 공부로 상제님[甑山, 미륵]의 진리가 드러난 것입니다. 이것은 도주님의 존호인 정산(鼎山)이 지니는 천부적 신성성이 단순히 글자만의 일치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정산(鼎山)이란 존호는 도주님에 의해 상제님의 법리가 밝혀지는 법리적 정통성의 계승이라는 종통계승의 의미 또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솥의 이치는 단순히 시루의 이치를 밝히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솥과 시루의 이치는 또한 음양합덕의 조화를 상징합니다. 즉 솥과 시루는 서로 상극(相克)인 물과 불을 조화하여 떡을 익힙니다. 그러므로 솥과 시루의 이치는 음양의 조화와 합덕을 의미합니다. 또한, 솥과 시루 각 하나만으로는 용사를 할 수 없고 두 용기가 합덕되어야 용사할 수 있음은 상제님의 계획과 이에 따른 도주님의 공부가 합덕되어야 진법이 완성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산이란 존호는 진법의 완성자가 이미 천부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또한 의미합니다.
  금산사의 이치에는 양산의 진리 외에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이치가 내포되어 있는데 바로 연원의 이치입니다. 도전님께서 “천지의 이치가 일육수(一六水)에 근원하였으므로 선천(先天)의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역리(易理)가 모두 수중(水中)에서 표출된 것”이라 하시고 “금산사의 용추[水中] 위로 솥과 미륵불이 표출되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선천의 문명을 연 복희씨와 문왕이 천지 이치의 근원[一六水]을 상징하는 물[황하, 낙수]에서 나온 용마하도와 신구낙서를 보고 희역과 주역의 역리를 밝혔고, 금산사 미륵전의 증산[미륵] 정산[솥]의 양산 역시 용소[연원, 一六水]를 숯으로 메운 위에 조성되었다는 뜻입니다. 도전님께서는 그 사연을 다음과 같이 밝혀주셨습니다.
 
천지신명들이 사람뿐 아니라 전 우주의 모든 것이 멸망의 길로 가므로 구천의 상제님께 호소를 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전 우주를 광제하시려고 오셨다.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에 오셨다. 이 금불은 진표율사가 모셨는데 용추못에 미륵금불을 봉안하라는 현몽을 받고 만든 것이다. 용추못은 용 아홉 마리가 목욕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었는데, 도저히 물을 메울 수가 없었다. 흙으로 메우면 흙이 간 곳이 없어져 버리고, 돌로 메워도 안 되고 했는데, 다시 계시가 있기를 “숯(목탄)으로 메워라. 안질이 있는 사람은 숯을 갖고 와서 여기 넣고 눈을 씻으면 눈병이 낫는다고 널리 알리면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못이 다 메워졌다. 여기에도 이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 메우고 좌대로 쇠 솥을 얹고 그 위에 금불을 모셔라”는 계시대로 솥을 걸고 금불을 모셨다. 금산사 미륵전 밑으로 들어가면 쇠가 있다. 그게 솥이다.58
 
  여기서 우리는 금산사 미륵전이 상징하는 양산도에 바로 연원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전님께서는 “본도의 연원(淵源)은 상제님의 계시(봉서)를 받으셔서 종통을 세우신 도주님으로부터 이어내려 왔다”, “이 연원은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으므로 연운과 혼돈해서는 아니 된다”59 라고 하셨고 연원에 대해 잘 알아야 함을 훈시하셨습니다.
  연원(淵源)의 연(淵)은 못, 웅덩이, 깊다는 뜻이고 원(源)은 근원, 수원, 물이 끊이지 않고 흐르는 모양 등을 뜻합니다. 따라서 연원이란 원래 물의 근원 자리로 수많은 물줄기가 생겨나게 하는 근본처의 의미이며 일반적으로 사물의 근원(根源), 본원(本源), 시작(始作), 기원(起源)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성씨를 파악함에 있어서 성씨를 있게 한 시조(始祖)와 같은 의미로 연원이란 개념을 쓰고 있으며, 사상(思想)의 근원으로도 이 개념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학문적 연원이라는 표현으로 현재 학문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연원의 개념 역시 동일합니다.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연원이란 현재의 진리, 사상, 사물을 있게 한 근원이자 뿌리라는 의미로 물줄기의 근원이 되는 수원지와 관련성을 지닌 개념입니다. 따라서 혈통과 학통 등의 계통을 세움에 있어 그 근원을 밝혀 학파나 종파의 사상적 교리적 정통성을 세우는 데 자주 사용되는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본다면 종통의 바른 이해를 위해 연원의 이치를 밝히시고 이를 바로 알 것을 말씀하신 도전님의 본뜻은 종통에 있어 교리적 정통성의 의미가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본도의 연원을 상제님의 유의(遺意)를 계승한 도주님으로 한다”라고 한 『도헌』 13조에서 도주님께서 단순히 이미 확립된 진리를 계승하거나 새롭게 해석하는 분이 아니라 상제님의 법리를 계승하여 그 법을 완성하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연원은 진리의 근원을 의미하며 단순한 해석자나 계승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천의 진리가 그 연원을 하도와 낙서에 둔다면 후천을 열어 담당하는 진리인 대순진리의 연원은 바로 금산사의 용추 위 미륵전에 진리의 상징으로 표출된 증산[상제님] 정산[도주님]의 양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고 하신 것은 증산, 정산 양산의 진리를 찾으라는 말씀으로 도의 근원인 연원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연원의 이치는 진법을 완성하시어 상제님과 더불어 연원이 되시는 도주님의 종통계승의 의미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해 주는 이치인 것입니다. 결국, 금산사의 이치는 도주님의 종통계승에 대한 이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종통계승자가 조을(鳥乙)의 이치, 즉 조씨 을미생으로 오신 것을 상제님께서는 이미 공사와 몇몇 상징을 통해서도 알려주셨습니다. 그 하나는 상제님께서 동곡 약방 남쪽 기둥에 친히 써 놓으신 친필로, 『전경』 앞표지 부분에 실린 글자입니다. 일반인들이 보면 읽기 난해한 이 글자를 도전님께서는 ‘봉(鳳)’이라고 알려 주셨으며, “상제님께서 봉(鳳) 자를 친필하신 뜻도 조을(鳥乙)을 밝혀 놓으심이라”60고 하셨는데 봉(鳳)이 왜 ‘조을’인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 바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를 정확히 이해하긴 어렵지만, 어렴풋이라도 그 이치를 알기 위해서는 봉(鳳) 자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설문』은 봉(鳳)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神鳥也, 天老曰 鳳之像也 麐前鹿後 蛇頸魚尾 龍文龜背 燕頷雞喙 五色備舉。出於東方君子之國 翺翔四海之外 過崐崘 飲砥柱 濯羽弱水 莫宿風穴 見則天下大安寕 从鳥凡聲 (신조神鳥이다. 천로[황제黃帝의 신하]가 이르기를, 봉의 형상은 앞이 기린이요 뒤는 사슴이며, 뱀의 목 · 물고기의 꼬리 · 용의 무늬 · 거북의 등 · 제비의 턱 · 닭의 부리를 가졌으며, 오색을 모두 갖추었다. 동방의 군자국에서 나와 사해 밖을 날아 곤륜산을 지나 지주砥柱61의 물을 마시고 약수에 깃을 씻으며 저녁에는 풍혈에서 자는데,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녕하다 하였다. 조鳥 부에 속해 있고 소리는 범凡과 같다)
 
  봉(鳳)이 신조(神鳥)이며 동방(東方)의 군자국에서 나오고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녕하다는 설명도 의미심장하지만, 조을(鳥乙)의 이치와 직접적인 관련을 지니는 것은 아마도 ‘从鳥凡聲’(종조범성), 즉 봉(鳳)이 ‘조(鳥) 부에 속해 있고 소리는 범(凡)과 같다’는 설명일 것입니다. 이것은 봉(鳳)이라는 문자가 뜻에 해당하는 글자인 조(鳥)와 소리에 해당하는 글자인 범(凡)이 합해져서 만들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봉(鳳)의 고문자에는 상제님의 친필과 유사한 글자가 있는데 이 문자는 조(鳥)의 고문자와 범(凡)의 고문자를 합친 모양으로 고문자이든 현재 문자이든 결국 봉(鳳)은 조(鳥)와 범(凡) 자로 파자됩니다. 

  봉(鳳)의 파자인 조(鳥)·범(凡)이 조(鳥)·을(乙)과 상통하려면 을(乙)과 범(凡)이 그 모양에서 상통해야 하는데, 현재 사용되는 글자의 형태로만 본다면 그 유사성이 쉽게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지만, 이것은 두 문자의 모양이 역사적 변화를 거치면서 그 동일성을 잃었기 때문으로, 사실 범(凡)과 을(乙)은 그 모양의 근간이 거의 동일합니다. 범(凡)은 그 부수인 几로도 씌어져 통용되는데, 几는 궤(几: 안석)와 수(几: 깃 짧은 새가 나는 모양)로 이 글자는 丿[삐침별]과 [乙의 고문자]을 합친 글자이며, 또한 옆으로 눕혀서 보면 전체 모양 또한 을과 형태가 유사합니다. 几와 쓰는 방식이나 형태가 거의 동일한 문자인 九[아홉구]의 부수가 을(乙)임을 본다면 범(凡)이 그 형태상 을(乙)과 상통함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결국, “상제님께서 봉(鳳) 자를 친필하신 뜻도 조을(鳥乙)을 밝혀 놓으심이라”는 도전님의 말씀은 봉(鳳)이 조+을(鳥+乙)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조(鳥)는 조(趙)와 음이 같으니 조을(鳥乙)이란 조을(趙乙)이 되므로, 상제님께서는 이 글자로써 당신의 뒤를 이어 종통을 세우고 도를 펼칠 진주(眞主)가 조(趙)씨이며, 을(乙)의 을미년에 이 세상에 와 계심을 알리셨던 것입니다.
  상제님의 종통계승자인 진인(眞人)이 따로 있으며 을미생임은 사실 상제님께서 재세시에 직접 밝히신 것입니다. 그중의 대표적인 것은 1903년에 있었던 다음의 일화인데 『전경』에는 없지만 1979년 초판이 발행된 『증산의 생애와 사상』에는 수록되어 있습니다.62
 
계묘년이 저물어 갈 때, 김보경과 그 외의 종도들이 시좌하고 있었을 때에 증산께서는 “내가 하는 일이 어찌 이렇게 더딜까?”고 한숨을 지으시니, 옆에서 시좌하고 있던 보경이 “무엇이 그렇게 더딥니까?”고 물었다. 말씀하시기를 “내가 신명을 시켜 진인(眞人)을 찾아보았더니, 이제 겨우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지라. 내 일이 이렇게 더디구나.” 보경이 그 말씀을 듣고 격분하면서 “말씀을 듣자 온즉 우리들은 모두 무용지물이며, 또한 지금까지 헛되이 따랐습니다.”고 여쭈었다. 증산께서 시 한 수를 읊으시면서 조급한 마음을 갖지 말라고 타이르셨다. 그 시는 이러했다. “때에도 그 때가 있고, 사람 중에도 그 사람이 있노라.(時有其時 人有其人)”63
 
  상제님의 뒤를 이을 진인이 1903년에 아홉 살이라면, 진인은 1895년 을미년에 태어나야 합니다. 몇몇 종도들을 통해 구전으로 전해진 이 일화는 상제님께서 재세시에 이미 종통계승자를 따로 정하셨고 을미생임을 명확히 하셨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상제님께서 친히 동곡약방에 새기신 ‘봉(鳳) ’자에서 우리는 을미생 조씨로 오신 도주님이 천부적인 종통계승자임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속의 민요에서 ‘조을시구’라는 후렴구가 조을(趙乙)과 시구(矢口)로 풀려서 ‘조씨 을미생을 알아라’는 뜻으로 해석됨도 상제님께서 안배하신 종통계승의 천부적 신성성을 잘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도주님의 종통계승을 통해 종통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도주님의 종통계승은 계시와 봉서로 이루어져 도주님은 상제님을 인세에서 직접 만나지 않으셨고, 따라서 상제님의 가르침을 들으신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도주님은 멀고 먼 만주 봉천에서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감오득도 하시고 귀국하시어 상제님의 진리를 선포하심으로써 진주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상제님의 종도 그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대순진리, 즉 상제님의 도덕을 펴시고 밝히셨을 뿐만 아니라 상제님을 구천상제님으로 봉안하시어 상제님이 우주 삼라만상을 주관하는 조화주이심을 명확히 선포하셔서 삼계대순 개벽공사의 실상을 보여주셨으며 오십년 공부로 대순진리의 진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즉 도주님에 의해 상제님의 진리가 밝혀지고 도법이 짜짐으로써 교리적 정통성이 세워진 것입니다. 도주님의 종통계승에 대한 이해는 바로 이 점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유명으로 상제님으로부터 종통을 전수받지 않으시고 판밖에서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이치에 의해 성경신(誠敬信)으로 도수를 밟아 계시로 종통을 계승하신 도주님을 이미 상제님께서는 공사로써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따라서 『전경』에 나타난 종통과 관련된 대부분의 공사와 예시는 도주님에 관한 것입니다. 난법자들이 이러한 도주님에 대한 공사를 자신의 것인 양 도용하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도주님께서 세우신 진법이 지니는 교리적 정통성과 상제님이 밝혀주신 종통계승의 천부적인 이치가 여합부절로 일치함을 우리는 앞서 보았습니다. 따라서 도주님의 종통계승이란 진리 곧 진법이 천부적인 이치에 의해 완성되고 계승됨을 의미한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도전님의 종통계승
 
  도주님께서는 1958년 3월 6일에 유명(遺命)으로 종통을 도전님께 전수하시고 화천하셨습니다. 종통을 계승하시기 전의 상황을 살펴보면, 1952년 충주지방의 부포감으로 임명되신 도전님께서는 1954년경부터는 도주님의 명으로 자주 공부를 시종하셨으며, 1955년 포감[포장]으로 임명되신 후에는 주로 본부에서 도주님을 지근에서 모셨습니다. 1956년경에는 수도인을 대표하는 자리에 오르셨는데 도주님의 명으로 1956년 발간된 『태극도통감(太極道通鑑)』이 ‘도인대표 박경호[朴景浩: 도전님의 원명(原名)]’명의로 초(抄)64 되었음을 본다면 이는 분명합니다.
  1957년에는 도주님으로부터 ‘우당(牛堂)’이라는 호를 받으시는데 우(牛)는 축(丑)으로 12월이니 도를 뜻하고, 당(堂)은 집을 뜻합니다. 따라서 도주님께서 도전님께 ‘우당’이라는 호를 지어주셨던 것은 앞으로 수도인들이 모두 도전님의 영도 아래 도를 닦게 됨을 예시하신 것입니다.
  1958년 2월 하순경에는 최고 간부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박 한경을 도전으로 임명하니 그는 총도전이니라. 종전의 시봉도전과는 전혀 다르니라”65는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당시 도전님께서 받으신 ‘도전’이란 직책은 시봉원(侍奉院) ‘도전’과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시봉원 책임자로서의 도전은 일종의 비서실장과 같이 도주님을 측근에서 모시는 일을 하는 직책입니다. 그러나 도전님께서 새로 받으신 ‘도전’ 직책은 종래의 도전과는 달리 도주님의 뒤를 이어 도를 이끌어나가는 ‘최고 책임자’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1958년 3월 6일 도주님께서는 미시(未時)에 방 밖에 간부들을 시립시키시고는, 도전님 한 분만 방안에 부르시어 도의 운영 전반을 맡도록 분부하셨습니다. 당시 도주님은 백일간의 불면 불휴로 심히 괴로워 하셨기에 도전님을 가까이 부르시고 머리에 손을 얹고 도의 운영 전반을 맡도록 유명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말씀을 마치신 도주님께서는 인수(人壽) 64세로 화천하시니, 이런 사실과 도주님의 유명(遺命)에 의한 도전님의 종통계승은 다음의 ‘명령전달’과 ‘공포사항’으로 전 도인들에게 알려졌습니다.
  도전님으로부터 ‘명령전달’과 ‘공포사항’을 전달받은 도인들은 아무런 동요 없이 도주님과 똑같이 도전님을 모시면서 도전님의 명을 받들어 나갔습니다. 실로 이때 배포된 ‘공포사항’은 도전님의 종통계승을 직접적으로 입증해주는 명백한 물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포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존(도주님)께옵서 무술 삼월 초육일 을미시(오후 한시 삼십칠분)에 화천하시다. 명령에 의하여 앞으로 모든 행사를 종전대로 도전령에 의하여 행함. 모든 도인들은 조금도 낙심 말고 성경신을 다하여 수도에 전심할 것.
 
 
 
  상제님과 도주님 간의 종통 전수가 계시로 이루어졌으며 도주님과 도전님 간의 종통전수는 유명(遺命)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계시는 타인이 알 수 없는 전달이기에 당사자가 아니면 정확하게 그 여부를 알 수 없지만, 유명은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사람이 확인했기에 정확하다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명으로 전수된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종통의 전수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도주님의 유명은 앞에 소개한 명령전달과 공포사항에도 있지만, 다음과 같이 『전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도의 운영 전반을 맡도록 분부를 내리고 “오십 년 공부 종필(五十年工夫終畢)이며 지기 금지 사월래(至氣今至四月來)가 금년이다. 나는 간다. 내가 없다고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행하여 오던 대로 잘 행해 나가라”….66
 
  이 유명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도의 운영 전반을 도전이 맡으라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행하여 오던 대로 잘 행해나가라는 것입니다. 행하여 오던 대로라는 것은 도주님께서 짜놓고 시행하신 진법대로 하라는 뜻으로 결국 도주님의 유명(遺命)은 “도전은 내(도주님)가 완성한 진법에 따라 책임지고 도의 운영을 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도전님께서 “도주님께서 부산 감천에서 화천하실 때 임원들을 모두 모아놓으시고 내게 도를 맡긴다고 분부하셨다. 해오던 대로 해 나가라는 분부를 모셨다”67라고 명확히 밝혀주신 점을 보더라도 도주님의 유명은 진법에 따라 해 나가라는 말씀인 것이 명백하다 할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도전님께서 도주님으로부터 유명으로 전수받은 종통의 핵심이 도주님이 완성하신 진법임을 알 수 있으며 도전님께서 이미 이 진법에 통해 있었음을 또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진법에 통하지 않고 진법대로 종단의 모든 운영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도전님은 종통계승 이후 도주님의 진법대로 종단을 운영하셨으며 많은 고초를 겪으시면서 이 진법을 지키셨습니다. 대순진리회의 정통성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진법을 총괄할 권능을 지니고 진법대로 행해 오신 도전님이 계신 곳이 바로 올바른 종통을 지닌 곳이요 진리가 있는 곳입니다.
  『대순진리회요람』은 대순진리회의 기원을 도주님의 봉천명(奉天命)으로부터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대순지침』은 도주님의 창도 이념 준행을 강조하여 종단의 창립이 도주님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헌』은 도주님을 창도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도전님께서 도주님의 유명에 따라 진법대로 도를 운영해 나가기 위해서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신 것이지 새로이 무엇을 하고자 창설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다음의 내용은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一九六九년(기유년) 四월에 도전께서는 전반적인 기구를 개편하시고 종단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다.68
 
  『대순진리회요람』은 도전님의 대순진리회 창설을 전반적인 기구개편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순진리회의 창설은 도전님께서 상제님의 유지에 따라 도주님이 완성하신 진법대로 도의 운영을 해 나가기 위해 행하신 기구개편과 명칭변경인 것입니다. 다음의 훈시는 종단 대순진리회의 종통의 핵심이 바로 도주님에 의해 완성된 진법의 계승과 그 수호에 있음을 명확히 밝히신 것입니다.
 
도법(道法)이 그렇다. 내가 만든 게 아니다. 도주 옥황상제님께서 펴신 법이다. 그 법을 지켜나가는 것이 도인의 도리이고 임무이다. … 구천상제님의 유지(遺志)를 받들고 도주님이 펴신 법을 따르는 게 우리의 도리고 임무다.69
 
 
도주님의 법은 상제님께서 전하신 법을 받들어 만드신 것이고, 도주님께서 짜놓으신 법을 받들어 하는 것이 나(도전님)의 법이다. 나(도전님)의 법은 상제님, 도주님의 법이다. 이것을 어기는 자는 도인이 아니라 난동자이다. … 상제님의 유지를 받들어 도주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법을 내(도전님)가 그대로 시행해 나가고 있는데….70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도헌』입니다. 1963년에 제정된 태극도 『도헌』에도 “도전은 도주의 유명을 계승하여 본도를 영도한다” (제11조), “도전의 임기는 종신제로 하고” (제19조)라 하여 유명으로 종통을 계승한 도전님 외에는 누구도 도전이 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대순진리회의 『도헌』 17조와 20조에도 동일한 항목이 있는데 결국 이러한 사실은 도주님의 유명을 받으신 박우당 도전님 외의 다른 누구도 도전이 될 수 없음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유명을 통한 종통계승을 마치심으로 도주님의 오십년 공부(五十年 工夫)가 종필(終畢)되었기에 우리는 유명에 의한 총도전으로의 종통계승이 바로 진법 완성의 마지막 도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도전님의 종통계승은 천지공사에 따른 도수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종통이 천부적(天賦的) 신성성과 연속성을 가진 것이라고 도전님께서는 훈시하신 것입니다. 결국, 도전님께서는 천부적으로 도주님의 진법(眞法)을 시행하고 운용하실 유일한 분이셨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고난에도 진법을 지키시고 진법을 시행하고 운용하실 수 있는 분이기에 도전직(都典職)을 임명받으셨고 종통을 계승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태극도의 일부 임원들이 종단 운영을 자신들의 욕심에 따라 어지럽힌 것은 도주님이 짜 놓으신 법의 하나인 도전님에 의한 도 운영을 부정한 것으로 난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도전님께서 이궁하신 후 도전님의 종통을 부정한 이들에 의해 장악된 감천 도장은 그 정통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결국, 도전님이 계시지 않는 감천 도장은 이미 태극도가 아니며 도전님에 의해 새롭게 펼쳐진 터전과 조직인 대순진리회가 태극도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종통을 진법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종단사(宗團史)를 보면 무극도에서 태극도가 나오고 태극도에서 대순진리회가 나온 것이 아니라 무극도의 명칭을 도주님께서 태극도로 바꾸시고 태극도의 명칭을 도전님께서 대순진리회로 바꾸셨음이 올바른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무극도, 태극도, 대순진리회의 3천의 이치는 종단 명칭의 3천으로 설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도전님의 종통계승이 도주님에 의해 완성된 진법의 계승과 시행, 그리고 수호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는 도전님의 종통계승에 있어서도 법리적 정통성이 매우 중요함을 의미하며 따라서 상제님·도주님·도전님으로 이어지는 종통이란 대순진리의 법리적인 정통성이 완성되고 계승되는 계보라 할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고 이르셨습니다. 상제님의 9년 공사와 도주님의 오십년 공부로 진법은 완성되었지만, 우리의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한 번의 과정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도전님에 의해 이루어지는 마지막의 과정은 진법으로 종단을 이끌어 양위 상제님이 남기신 유업을 완결하시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도주님께서는 도전님에게 도의 운영 전반을 맡기신 것이며 종통을 전하신 것입니다.
  도전님께로의 종통계승은 유명으로 이루어지므로 매우 명확합니다. 그러하기에 도전님의 종통을 부정한 일부 난법자들의 난동이 있기 전 10년 동안 태극도는 도전님의 영도하에 일치단결하여 크게 성장 발전할 수 있었고 또한 도전님의 대순진리회 창설 이후 많은 수도인들이 도전님을 추종하여 서울로 상경하였던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이미 공사로써 도전님의 종통계승과 도전님께서 하실 일을 도수로 짜 놓으셨습니다. 따라서 도전님 종통계승의 천부적인 면이 『전경』의 여러 천지공사에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유명으로의 종통계승이 명확하며 의심할 바가 없기에 우리가 이를 일일이 해석하는 것은 사족에 불과하며 종통계승의 의미를 희석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도주님의 유명에 의한 종통계승을 믿지 못하면서 다른 어떠한 천부적인 증거를 논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계속)
   

01 교운 1장 41절.
02 교운 1장 41절.
03 교운 1장 38절.
04 행록 2장 14절.
05 1991년 2월 12일 훈시.
06 예시 87절.
07 교운 1장 36절.
08 주역점을 칠 때 49개의 시초를 양손으로 나누는 것을 일영(一營)이라 하고, 오른쪽의 시초 하나를 왼손 새끼손가락과 약지에 끼우는 것을 이영(二營)이라 하며 왼손의 시초를 4로 나눠서 남는 수를 약지와 중지에 끼우는 것을 삼영(三營)이라 하고 오른손의 시초를 4로 나눠서 남는 수를 검지와 중지에 끼우는 것을 사영(四營)이라 합니다. 이 사영(四營)의 과정을 통해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시초를 합하는데 이를 일변(一變)이라 합니다. 일변의 과정에서 합해진 시초를 제외한 나머지 시초로 다시 사영(四營)을 행하여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시초를 합하면 이를 이변(二變)이라 하고 거기서 남겨진 시초로 다시 사영(四榮)을 행하여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시초를 합하면 이를 삼변(三變)이라 합니다. 일변 이변 삼변으로 모여진 시초를 제외한 나머지 시초를 4로 나누면 9, 8, 7, 6이 되는데 이것으로 각각 노음, 소음, 소양, 노양의 효를 결정합니다.
09 1991년 2월 12일 훈시.
10 1991년 2월 20일 훈시.
11 『대순지침』, p.13, p.14.
12 「도헌」 13조.
13 『대순진리회요람』, p.9.
14 “…같은 말씀 가운데 삼계대순(三界大巡) 개벽공사(開闢公事)의 뜻을 담고 있는 대순(大巡)을 인용(引用)하여 이름한 것이다.” ( 『대순진리회요람』, p.6)
15 『대순지침』, p.14.
16 1991년 2월 20일 훈시.
17 교운 2장 32절 참조.
18 교운 2장 62절 참조.
19 교운 2장 66절.
20 교법 2장 41절.
21 1991년 2월 12일 훈시.
22 교법 3장 3절.
23 공사 3장 41절 참조.
24 1986년 10월 28일 훈시. 동일한 내용의 훈시를 이미 1982년에도 해주셨다. “『전경』에 12월 26일 재생신(再生身)은 12월 4일로서 1년 운회의 만도(滿度)를 채우실 도주님의 탄생을 뜻하심이다. <82.윤4.24>” (『대순지침』, p.13)
25 1989년 3월 7일 훈시.
26 1984년 11월 5일 훈시.
27 1984년 12월 26일 훈시.
28 1989년 4월 12일 훈시.
29 1991년 2월 20일 훈시.
30 1991년 2월 20일 훈시.
31 1991년 2월 12일 훈시.
32 ‘수종백토주청림(須從白兎走靑林)’은 『鄭鑑錄秘訣集錄』의 《鑑訣》<無學傳>의 「五百論史秘記」와 《附錄 擬似稿本》의「秘訣」, 『鄭鑑錄』의 《鑑訣》 「五百論史秘記」와 《鑑寅錄》의 『七言古訣』, 『批難鄭鑑錄眞本』 제5장의 「五百論史秘記」에 있는 한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한번 확인하고 가야 할 부분은 원래 정감의 예언이라 할 감결, 즉 『정감록』에는 ‘수종백토주청림(須從白兎走靑林)’의 구절이 없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사실 조선 총독부의 비결서 수집과정에서 수집된 『無學秘記(무학비기)』의 《五百論史秘記》 마지막 구절인데 수집된 비결서를 모두 모아 편집하는 과정에서 정감록에 포함된 것이다. 『無學秘記』 필사본 원본은 조선총독부를 거쳐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예언으로 읽는 우리 역사-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0) 현대판 정본 정감록의 배후를 찾아라 [서울신문]|2005-05-26| 26면 참조.
33 1991년 2월 20일 훈시.
34 『증산의 생애와 사상』, p.265 참조.
35 1989년 5월 8일 훈시.
36 『대순지침』, p.13 참조.
37 교운 1장 60절 참조.
38 행록 3장 31절.
39 공사 3장 37절.
40 예시 88절.
41 교운 2장 66절.
42 『대순지침』, p.14.
43 『대순지침』, pp.14-15.
44 예시 14절.
45 예시 79절.
46 권지 1장 11절.
47 1984년 12월 26일 훈시.
48 1991년 2월 12일 훈시.
49 1985년 1월 19일 훈시.
50 1991년 2월 20일 훈시.
51 이것이 도주님의 ‘50’년 공부 종필을 연상시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52 실제로 『周易傳義大全』에서는 모든 괘의 설명을 서괘(序卦)로 시작하고 있다.
53 혁괘(革卦) 이전의 괘는 정괘(井卦)인데 『周易傳義』는 우물은 놔두면 더러워서 못쓰게 되고 바꾸면 맑고 깨끗해지니 불가불 혁할 수밖에 없다고 두 괘의 관계를 설명한다.
54 교운 1장 66절.
55 제생 43절.
56 예시 15절 참조.
57 예시 86절.
58 1991년 2월 20일 훈시.
59 『대순지침』, p.14.
60 1982년 음 4월 24일, 윤 4월 26일 훈시.
61 황하(黃河)가 급류로 흐르는 곳인 맹진(孟津)의 강 복판에 우뚝 서 있는 돌기둥. 격류 속에 서 있으면서도 우뚝 버티고 있다고 한다. <수경(水經)> 저주(底柱).
62 『증산의 생애와 사상』은 도전님께서 “상제님의 강세와 화천까지의 행록 및 사상이 밝게 수록되었으니 『전경』과 동일하게 중요시 되는 바 의무적으로 보존토록 하라.”(도전님 훈시 1979.1.29)고 하신 책입니다.
63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증산의 생애와 사상』, 1979, pp.103-104. 이 일화는 종도들 사이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64 가려뽑아 적다. 기록하다. 발췌하다.
65 교운 2장 64절.
66 교운 2장 66절.
67 1989년 6월 25일 훈시.
68 『대순진리회요람』, p.13.
69 1989년 11월 21일 훈시.
70 1991년 2월 20일 훈시.
 

할방 (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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