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모르는 공부

인문/칼럼비상 (날개) 2020 夏

전경 공사 1장 36절

 

상제께서 앞날을 위하여 종도들을 격려하여 이르시니라. “바둑에서 한 수만 높으면 이기나니라. 남이 모르는 공부를 깊이 많이 하여두라. 이제 비록 장량(張良)·제갈(諸葛)이 쏟아져 나올지라도 어느 틈에 끼어 있었는지 모르리라. 선천 개벽 이후부터 수한(水旱)과 난리의 겁재가 번갈아 끊임없이 이 세상을 진탕하여 왔으나 아직 병겁은 크게 없었나니 앞으로는 병겁이 온 세상을 뒤덮어 누리에게 참상을 입히되 거기에서 구해낼 방책이 없으리니 모든 기이한 법과 진귀한 약품을 중히 여기지 말고 의통을 잘 알아 두라. 내가 천지공사를 맡아 봄으로부터 이 동토에서 다른 겁재는 물리쳤으나 오직 병겁 만은 남았으니 몸 돌이킬 여가가 없이 홍수가 밀려오듯 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위 성구에 의하면 남이 모르는 공부는 결국 의통(醫統) 공부로 귀결됩니다. 의통(醫統)의 의(醫)는 의원 의, 고칠 의이고, 통(統)은 거느릴 통, 합칠 통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통은 통할 통(通)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의술에 통하여 못 고치는 것이 없다.”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기이한 법과 진귀한 약품을 귀히 여기지 말고 의통을 잘 알아 두라” 하신 것입니다.

  의통은 「병세문」에도 나오는데, 이에 의하면 “세상에 충·효·열이 끊어져 천하가 모두 병들었다(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라고 하셨고, 이에 대한 처방으로 “도를 얻게 되면 큰 병도 작은 병도 약을 쓰지 않아도 낫게 된다(得其有道 則大病勿藥自效 小病勿藥自效).”라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그다음에 나타난 의통(醫統)이란 문구와 연결되는 것으로 결국 득도(得道)를 의통이라 하신 것입니다.

  원래 무슨 병에는 무슨 약이 좋다는 식으로 고유한 치료약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는 의학 기술의 발달로 많은 병이 정복되었지만 아직도 못 고치는 병이 많고, 또 새로운 병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종 병이 생기면 거기에 맞는 치료약이 없어 새로 개발하여야 하는데 워낙 병의 진화 속도가 빠르다보니 미쳐 약이 개발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신종 병에 희생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통은 모든 의술에 통하고 미리 준비해 놓은 약과 같아서 일종의 만병통치약과 같은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병겁 만은 남았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것은 상제님의 권능으로 천지공사로 다 푸셨지만 병겁 만은 남겨 놓으신 것입니다. 포정문 〈대순진리회〉글에도 ‘수천백 년간 쌓이고 쌓인 무수 무진한 삼계의 모든 원울을 무형무적지중에 해방하심에 있어서…’라고 하여 상제님께서 모든 원과 한을 해소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병겁을 우리에게 남겨 놓으셨지만 이것에 대한 약(藥)도 우리에게 의통으로 남겨두신 것입니다. 이 의통 공부는 구천상제님의 천지공사와 도주님의 오십 년 공부 종필로 전(傳)하신 도법과 도전님의 영도로 우리에게 내려진 공부입니다.

  우리 공부가 ‘남이 모르는 공부’라고 하는 속성은 ‘판 밖’이라는 용어에서 잘 나타납니다. 구천상제님께서 “판 안에 있는 법으로써가 아니라 판 밖에서 새로운 법으로써 삼계 공사를 하여야 완전하리라”
(예시 1장 4절), “대범 판 안에 있는 법을 써서 일하면 세상 사람의 이목의 저해가 있을 터이니 판 밖에서 일하는 것이 완전하리라”(행록 2장 14절), “판 밖에서 성도하리라”(교운 1장 17절) 하신 ‘판 밖’의 의미는 사전적으로 ‘일이 벌어진 자리 밖’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전경』의 판 밖은  ‘선천의 도수에 의하여 벌어지는 현실이라는 제도권 밖’이라는 의미라 할 것입니다. 

선천은 상극 도수이고 이로 인해 도가에서도 음해가 있어 도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목의 저해를 피해 천지공사나 앞으로 나오는 도의 완성도 선천의 도수가 작용하지 않는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천의 판이란 이미 선천의 상극 도수에 의하여 지배되는 현실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는 방해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큰 배를 건조하는데 처음부터 바다 위에서 건조하면 출렁거리는 파도에 의해 쉽게 배가 완성되기 힘이 드니 출렁거리는 파도가 닿지 않는 곳에서 안전하게 완성된 뒤에야 바다에 띄우는 것과 같습니다. 상제님께서 개벽을 말씀하시면서 낡은 집에 살려면 엎어질 염려가 있으므로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따라서 행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지어야 하는 것(공사 1장 2절)이라 하신 말씀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병겁은 인류가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병겁이 천하의 무도병이 곪았던 것이 터지는 과정이라면 의통은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권능을 상제님으로부터 부여받는 것입니다. 만약에 병겁이 오기 전에 전 인류가 도에 입문하고 수도를 한다면 인류가 겪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에 먼저 도를 아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의통은 나 혼자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이 죽어 갈 때 살리기 위한 준비인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전경』의 또 다른 구절에 한 농부가 농한기인 이른 봄에 쉬지 않고 자기 논에 수원지의 물이 잘 들어오도록 봇돌을 깊이 파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비웃다가 여름이 되어 가물었을 때 그 농부만 근심 없이 물을 잘 대었다(행록 4장 24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서 봇돌은 봇도랑을 말하는데, 보에서 여러 논에까지 물길을 내어 물이 흘러오도록 만든 도랑입니다. 보(洑)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자그마하게 둑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막아 두는 곳입니다. 봇돌을 깊이 파야 수원지에서 오는 물을 논에 잘 댈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마음 공부를 깊이 하여 연원으로부터 오는 도통과 도덕으로 많은 사람을 살리는 마음을 키우고 닦는 공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봇돌을 파는 농부의 비유에서 남이 모르는 공부의 또 다른 속성이 잘 드러납니다. 농한기에 어떤 농부가 봇돌을 팝니다. 다른 농부는 이를 비웃습니다. 그러나 여름이 되어 가뭄이 들었을 때 그 농부만 논에 물을 댈 수 있습니다. 여름이 와 가뭄이 들기 전에는 봇돌을 파는 일의 정당성이 증명되지 않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의 비소를 받을 뿐입니다. 

  여기서 봇돌을 파는 사람은 우리 수도인으로 앞날을 대비하여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청계탑 병세문’에도 나와 있듯이 편안할 때 위급함을 잊지 않는 진정한 호남아인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천하의 형세에 어두운 자는 죽는 기운을 얻고 천하의 형세에 밝은 자는 사는 기운을 얻는다고 하신 것처럼 봇돌을 파는 자는 천하의 형세를 아는 자로서 수도인이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남이 모르는 공부’에서 ‘남’은 수도인이 아닌 사람을 말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봇돌을 파는 농부를 다른 사람들이 비웃었듯이 우리의 도는 예나 지금이나 들어 본 적이 없는 도로 믿고 닦기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봇돌을 파 수원지의 물이 자신의 논에 잘 들어오도록 한 사람은 자기 논에 물을 대고 남으면 이웃 논에도 물을 댈 수 있듯이 의통은 나 혼자 살자는 것이 아니라 남을 살리자는 것입니다. 봇돌을 깊이 판 정도에 의하여 논에 물을 대는 정도가 달라지듯이 닦은 바 기국에 의하여 의통이 되는 정도에 따라 사람을 살릴 것입니다. 그러나 수도 과정에서 닦은 바 기국과 도의 깊이는 신명만이 알 뿐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종착역에서 서로 만나 하나가 되기 전까지 수도는 자기와의 외로운 싸움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남이 모르는 공부’의 의미는 ‘자신만이 아는 마음 공부’의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도가 드러나기 전에는 우리의 공부는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남 잘되는 공부를 그날이 오기까지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도의 과정은 겁액을 극복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겁액은 척신으로 다가 옵니다. 그 대결에서 내가 한 수라도 높아야 수도의 다음 단계로 진행됩니다. 척신과의 대결에서 한 수 한 수 내가 높아져 갈 때 나의 수도는 점점 깊어져 갑니다. 그중 가장 큰 척은 교리적으로 혼란스럽게 하여 도를 못 닦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제님의 진리를 깊이 공부하지 않으면 척과의 수 싸움에서 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가까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감정 등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와 자신을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여 상제님의 진리를 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남이 모르는 공부는 병겁을 대비하여 미리 준비하는 의통 공부입니다. 이 의통은 의술에 통하여 못 고치는 병이 없는 것으로 득도(得道)에 그 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공부가 남이 모른 공부라고 하는 속성은 선천의 도수가 상극 도수로 현실이 이에 지배되어 있기 때문에 이목의 저해를 우려해서 천지공사에서부터 성도(成道)에 이르기 까지 판밖에서 해야 완전하리라 하신 상제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에 입문하지 않은 사람은 도가 완성되어 드러나기 전에는 그 진실을 알 수 없기에 남이 모르는 공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마음의 수도된 정도는 의통으로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수도과정에서 드러나지 않는 것이므로 또한 남이 모르는 공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상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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