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란 생물체의 전신이나 일부분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아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니 살면서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병을 말함에 있어 우리는 보통 ‘병들었다’, ‘병 걸렸다’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병은 행(幸)·불행(不幸)처럼 운이 나빠서 들었다는 어감(語感)이 있을 뿐 아니라, 자신보다 외부의 어떤 요인에 의해서 병이 생겼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니 치료방법 또한 이를 의술이나 약품으로 제거하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때 ‘病自己而發’(예시 36절). 즉 병(病)은 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일어난다는 상제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여 병에 대한 의식전환을 해보고, 치유의 방법을 모색해 나가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외부의 바이러스가 아닌 ‘나 자신’이라고 하는 인식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전환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병은 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것이 사실일까? 일상적으로 병의 원인을 병원균 감염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병원균 접촉만으로 병이 유발된다면 병원관계자들의 건강은 언제나 심각한 상태에 놓여있어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병원균과 미생물이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미생물 자체보다 사람의 면역력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수많은 미생물과 병원균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병의 원인은 자신의 떨어진 면역력과 기력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의사나 한의사가 환자를 처방할 때 무엇보다 먼저 마음을 편하게 하고 쉬라는 것도 이를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면역력과 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여러 가지가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대부분 과로(過勞)와 심기(心氣)의 변화가 그 원인이라 보고 있다. 심기의 작용으로 보는 것은 동양의 의학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편작01의 이야기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신의(神醫)로 불렸던 편작은 삼형제 중 막내였다. 그의 형제는 모두 뛰어난 의술을 갖고 있었는데 하루는 위나라 임금이 편작에게 물었다.
“그대 삼 형제 중에 누가 병을 가장 잘 고치는가?”
“저의 큰형 의술이 가장 뛰어나고 다음은 둘째 형입니다.”
“그런데 그대 형들은 왜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가?”
“저의 큰형은 환자가 아픔을 느끼기 전에 얼굴빛으로 이미 그 환자에게 닥쳐올 병을 압니다. 그리하여 환자가 병이 나기도 전에 병의 원인을 제거하여 줍니다. 환자는 아파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치료를 받게 되므로 제 큰형이 자신의 고통을 제거해주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큰형이 명의로 소문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둘째 형은?”
“저의 둘째 형은 환자의 병세가 약할 때 그 병을 알아보고 치료를 해 줍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둘째 형이 자신의 큰 병을 다스려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둘째 형이 명의로서 이름을 떨치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환자를 치료하는가?”
“저는 환자의 병이 커지고 환자가 고통 속에서 신음할 때에야 비로소 병을 알아봅니다. 병세가 심각하므로 맥을 짚어 보아야 했고 진기한 약을 먹여야 했으며, 살을 도려내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저의 그런 행위를 눈으로 확인했으므로 제가 자기들의 큰 병을 고쳐 주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제가 명의로 소문나게 된 것은 이처럼 하찮은 이유에서입니다.”
이처럼 큰형은 사람들이 자신의 병증을 느끼기도 전에 얼굴빛만 보고도 장차 어떤 병에 걸릴 것을 알아내어 미리 병의 원인을 제거해주었다. 신(神)·색(色)·형(形)·태(態)로 망진(望診)하는 사람이 신의(神醫)인데, 얼굴빛이나 모양으로 드러난 심기(心氣)의 발로(發露)가 병의 원인이 되었으므로, 이를 다스린 신의의 치료는 부지불식(不知不識) 중 이루어졌다.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의원(醫員)이 편작의 큰 형이었던 것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명의(名醫)들의 가르침으로 아래의 것들이 전해진다.
노다상간경근(怒多傷肝梗筋)
- 화를 많이 내면 간이 상하고 근육이 뻣뻣해진다.
희다상심산혈(喜多傷心散血)
- 기쁨이 지나치면 심기가 상하고 피가 흩어진다.
사다상비삽육(思多傷脾澁肉)
- 생각이 많으면 비장이 상하고 살갗이 까실까실해진다.
우다상폐허기(憂多傷肺虛氣)
- 걱정이 많으면 폐가 상하고 기가 허해진다.
이와 같이 육신의 근육과 장기(臟器)가 마음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전문가나 생기론자02들만의 주장이 아니라도 누구나 어렵지 않게 경험해본 일이다. 근래에는 현대의학에서도 스트레스, 원망 등 부정적인 마음은 기력과 면역력을 떨어뜨려 병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고 보는 추세이다. 원심(怨心)이나 한(恨) 또는 그밖에 버리지 못한 여러 가지 사연(品)들이 산(山)처럼 쌓여 암()이 되고 이것이 몸녁() 속에 있으니 암(癌)이라는 글자가 된 것이나, 이들을 마음에 꿰어 놓았다 하는 串(꿸 천)과 心(마음 심)의 합성되어 患(환)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지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순지침』 안심(安心)03편에 나와 있는
“마음이 몸의 주로서 제병 제악(諸病諸惡)을 낚아들이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病自己而發’이 이러한 마음의 작용임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더구나 이 말씀은, 마음을 낚시에 비유하시어 실천으로 옮기고자 하는 수도인들에게 마음 씀의 묘리를 절묘하게 일깨워 주신 듯하다. 낚시 바늘은 사물을 낚아채기에 아주 이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또 한 번 꿰면 여간해서는 빠지지도 않는다. 이왕 마음의 구조가 그렇다면, 좋은 것을 낚을 일이다. 원망(怨望)이나 미움으로 사사건건 주위의 일들을 바라보면, 그 마음에 낚여 걸려 들어오는 일들은 모두 병의 요인이 되어 자신을 괴롭힐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病自己而發’과 더불어
“원수의 원을 풀고 그를 은인같이 사랑하라. 그러면 그도 덕이 되어서 복을 이루게 되나니라”(교법 1장 56절)
일러주신 상제님의 말씀은, 병을 치유하는 중요한 실천덕목으로 삼을만 하다. 해원(解)에 바탕을 둔 이러한 마음 씀씀이는, 자신으로부터 일어난 병의 쾌유(快癒)는 물론 상대에게도 덕이 되어 상생(相生)의 활로(活路)를 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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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춘추 시대 말기 당시의 진(晉)나라 사람. 성은 진(秦),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질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칭송하여 상고 헌원씨(軒轅氏) 시대의 명의 ‘편작(扁鵲)’처럼 고명하다는 의미로 "편작"이라 불렀다.
02 「질료」(hyle; matter)를 통하여 현실적으로 표현된 외형 속에 「생기」(psyche; soul, sprit)라는 비물질적인 요소가 들어가 생명을 지니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생기론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생명체는 비물질적인 내부의 힘 혹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생명의 특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생기론자들은 물리와 화학만으로는 생명의 기능과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고 믿는다. 생기론은 생명은 단지 유기물질의 복잡한 조합으로 생겨난다는 기계론적 유물론과는 반대가 된다.
03 『대순지침』 p.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