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순종교문화연구소 김진영
팬더믹으로 연기되어온 도장의 행사가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는 가운데, 여주본부도장내 대순진리회 박물관이 모든 단장을 마치고 마침내 문을 열었다. 그동안 종단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의 장’으로서 박물관의 개관을 손꼽아 기다려온 많은 도인에게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종단이 박물관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종단이 걸어온 유구한 역사와 정체성을 보존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표상하는 것이며 구성원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결속력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대내외에 종단을 소개하고 그 위상을 보여주는 가장 효율적인 기제를 갖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신성성을 이유로 제단이나 성소에 비종교인이나 타종교인의 접근을 꺼리는 종단일지라도 박물관이 지닌 공공성은 심리적 저어함(anxiety)을 완화한다. 다시 말해, 포교나 포덕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종교박물관이 가진 또 다른 미덕인 셈이다. 우리 종단의 규모를 감안하면 박물관 건립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지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서양 속담처럼 철저한 준비 끝에 탄생한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다리던 박물관의 개관에 맞춰, 이 글에서는 박물관의 다양한 역할과 가치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문화의 정수를 담는 박물관
종단에서 처음 박물관 건립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유물도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있다고 해도 비교적 최근 것이라서 전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염려하는 일부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우는 접어두자. 왜냐하면 이제는 직접적인 유물의 전시를 뛰어넘어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사물 인터넷 또는 건물 외벽이나 실내 공간에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다양한 콘텐츠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 또는 Media facade)과 같은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실사보다 더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는 콘텐츠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물 한 점 없이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수용자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박물관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우리 종단이 글로벌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종단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통합하는 ‘박물관’의 건립은 필수적이다.
이제 ‘유물’의 진정성(authenticity)을 ‘아주 오래된’ 오브제(objet: 전시물)에서만 찾았던 독자들의 생각이 조금은 바뀔지도 모르겠다. 찰나가 모여 영겁이 되듯이, 우리 도장의 하루하루가 모여서 역사가 되고 정체성이 된다. 북을 울릴 때 사용하는 북채, 맨 처음 발간된 『전경』 1쇄본, 도장 건축물의 청사진, 도인들의 작업 모습을 담은 사진, 정기 간행물인 《대순회보》, 치성 때 사용하는 진설용 그릇 등에 고고히 흐르는 대순진리회만의 이야기와 기호(記號)는 도장이라는 공간의 숭고한 기운과 더불어 오늘도 세월을 마주하며 유물이 되어가는 중이다. 즉, 우리의 의례, 법방 및 포덕, 교화 등에 사용되는 유ㆍ무형 자원의 가치는 정통성 및 역사성과 더불어 도인의 진정성 어린 의지와 정성을 통해 발현되는 것이다.
교육기관으로서의 박물관
지난 10년간 인류는 근 100년 동안 축적해온 것보다 더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생산해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쏟아지는 무수한 지식정보들은 불과 6개월 전에 학습한 지식을 순식간에 ‘쓸모없는 구시대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명멸하는 지식생태계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만 경쟁에 뒤처지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같은 추세는 기술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지식정보사회에서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 개인의 경쟁력을 결정할 만큼 필수적인 지식은 어떤 습득과정을 거치는가? 가장 기본적으로는 학교 교육이 있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우리나라의 초ㆍ중등교육기관에서 ‘사람다움’을 내세우는 전인교육은 공고한 스카이캐슬이 존재하는 한 공염불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일생의 가장 감수성이 뛰어난 이 시기에 백화점식 입시 위주의 지식을 주입받으며 성장한다. 대학 교육은 또 어떠한가? 눈에 띄는 성과를 도출하기 쉬운 실용적인 학문에 밀려 퇴출되다시피 한 인문학의 경우를 보더라도 과거 지식의 총아로서 인간의 삶에 방점을 두었던 철학이나 종교, 문학과 같이 심오한 ‘사유체계’를 요구하는 지식은 지금의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오히려 천대받는 존재로 전락하였다. 지식 분야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우리의 영성을 풍부하게 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인류에 기여하는 삶을 위한 지식은 점차 그 빛을 잃어 가고 있다.
그러면 정말 인문학이나 예술학의 수요가 사라지고 있는 것인가? 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이다. 평생교육원, 각종 문화센터, 사설 인문학학교, 그리고 유튜브와 같은 인터넷 매체 속에서 인문학은 오히려 전례 없는 활황을 맞고 있다. 지식과 정보가 개인의 성패를 좌우할 필수요소가 되고 창의력이 만드는 새로움이 곧 우리의 경쟁력이자 든든한 지원군이라 한다면, 창의력의 내재화를 위해서 문화예술적 감성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박물관은 바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문화복지의 시작점이다. 문화복지는 곧 문화자본과도 직결되는데, 이것은 경제자본보다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대신 하루아침에 획득하기 어렵다. 어떤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이 벼락부자가 되는 것은 가능할 수는 있어도 ‘컴맹’이 하루 만에 프로그래머가 되기 어렵고 외국어를 단 며칠 만에 완벽하게 습득하기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교육은 문화자본의 형성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01가 주창했듯이 문화취향의 차이, 문화예술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능력이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힘이라면, 교육 분야에서 대순진리회의 박물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는 보다 자명해진다.
우리 박물관의 전시 대상은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의 발자취와 종단의 역사 속에서 대순진리회의 정체성을 담보한다. 그 숱한 이야기는 더욱 전문화된 교육이 뒷받침될 때 교화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전화(轉化)할 수 있다. 교육은 케케묵은 ‘죽은’ 역사를 들춰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나가는 우리 도인에게 ‘살아있는’ 도심을 일깨우는 훌륭한 수단이다. 후천세상을 열어갈 도인들의 문화적 역량 제고는 문화욕구 충족이라는 개인적 관점의 수용일뿐만 아니라 포덕을 통한 세계 교화의 기초를 마련케 하는 실용적 목적 또한 수행한다. 그것이 수강이나 방면의 교화에서 접하기 어려운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요구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연구기관으로서의 박물관
흔히 전시와 보존이 박물관의 기본적인 기능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아는 상식이지만, 박물관이 연구의 핵심기관이라는 사실은 종종 간과된다. 보존하고 있는 유물과 기록을 바탕으로 한 역사와 문헌연구는 물론이고 정보기록, 전시행정이나 문화경영, 문화기획 등의 관련 분야의 연구가 모두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건축학이나 관광학, 문화경제학 등 인문, 사회, 예술을 넘나들면서 수많은 인접 학문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 결과, 세계박물관학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상을 차지하는 학회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등재 심사 과정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전문가들도 바로 박물관학자들이다. 향후 종단의 세계화, 도장의 세계유산 등재까지 염두에 둔다면 박물관의 설립은 우리 종단으로서도 세계로 향하는 의미 있는 첫걸음을 뗀 것이다.
▲ 스미스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뮤지움 홈 페이지
대순진리회 박물관은 이제 첫걸음마 단계이고 수집품이나 예산 및 인적자원 역시 한정적이지만 연구기관으로서 나아갈 방향은 미국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에서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연구 역량을 자랑하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산하에 19개의 부속 박물관과 9개의 연구소, 국립동물원을 포함하는 하나의 거대한 ‘지식센터’이자 ‘연구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46년 ‘지식의 증대와 확산(For the increase and diffusion of knowledge)’이라는 슬로건 하에 세워진 이 박물관의 부설 연구소는 소장품을 기반으로 하는 문헌연구는 물론이고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카리브연안의 산호초 생태계 연구, 철새 연구, 멸종위기의 언어복원, 에너지, 게놈(genome), 화산, 우주 및 인류기원에 관한 연구 등 인문학에서 생물학, 지리학, 예술학, 유전학, 공학, 천문학까지 그야말로 ‘박물(博物)’의 보고(寶庫)로서, 연구의 스펙트럼과 그 규모는 놀라울 정도로 방대하다. 연구결과물은 박물관에서 발간하는 잡지와 저널에 게재되며 누구나 공유할 수 있다. 또한, 연구물의 성과를 재조직하여 전시나 미디어콘텐츠로 활용하는 등 분야 간 상호작용도 활발하다.
스미스소니언은 전문가를 대상으로 학문적인 논의가 심층적으로 오가는 학술대회도 매해 주최한다. 문화재 보호, 박물관학, 교육, 첨단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주제를 선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세계의 석학들이 머리를 맞대고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것을 넘어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고찰하는 토론의 장을 마련한다.
전통적인 학문을 넘어 학제 간 경계를 허무는 융합연구까지 아우르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비해 종교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하는 대순진리회 박물관은 그동안 축적한 전문지식과 인적자원을 활용하여, 상제님과 대순사상 및 종단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 관한 연구를 중심으로 특화할 수 있다. 서구 근대성이 유입되던 혼란한 시기에, 철학가로서, 그리고 사상가로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던 상제님께서 기존 유교적 사회 체계의 불합리성과 모순에 혁신적 변화를 꾀한 혁명가였음을 상기할 때, 세속적 관점으로 환원하여 보더라도 대순사상 연구는 주목할 만한 주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향후 대순진리회 박물관은 공공성, 개방성을 기치로 창생을 깨우치고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상제님의 뜻을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통해 구현하는 인큐베이터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박물관 발전을 위한 디지털라이징(digitalizing)
최근의 박물관들은 유물 수집과 전시라는 협의의 개념에서 벗어나, 대중에 다가가기 위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식의 전승에 그치지 않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특히 과거의 박물관이 감춰진 공간에서 수동적으로 지식의 소비를 강권했다면 현대의 박물관은 열린 공간에서 관람객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한다. 또한 다양한 학문이 유기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박물관의 환경은 지식의 특권적 지위를 낮추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박물관의 개방성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개방적이고 효율적인 박물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보존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지원하는 디지털 아카이빙(archiving: 파일의 보존)02 구축이 필요하다.
아카이빙 과정에서 축적한 자료들은 연구자든 일반인이든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즉, 소수만이 독점하고 있는 지식이나 활용하지 못하고 사장되는 지식을 투명하게 공개된 플랫폼을 통해 아카이빙함으로써 명실공히 ‘지식 민주화’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연구의 발전을 이끌고, 공론의 장에서 연구물들은 끊임없는 성찰과 논의를 통해 학문적 지평을 넓히며, 연구자 개개인의 자질을 키워줄 밑거름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현대 박물관의 역할과 지향하는 가치들을 소개하고 대순진리회 박물관의 개관이 시사하는 바를 살펴보았다. 아직은 실무적 관점의 연구가 부재하고 여주본부도장도 박물관과 같은 복합문화시설의 운영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특히 개관 초기에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 도인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박물관 관계자들이 박물관 본연의 역할을 잘 인식하고 운영의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수렴해나간다면 본궤도에 오르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난(至難)한 과정을 견뎌내고 박물관 시대를 열 수 있게 한 도장 내 ‘박물관팀’과 ‘현장 작업팀’ 그리고 원활한 작업 수행을 위해 자료를 모으고 연구 성과를 축적한 여러 연구자, 박물관 건립에 많은 정성을 모아준 우리 도인들의 노고가 언젠가 천하포덕의 마중물이 될 것을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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