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눈의 괴물 - '질투'의 심리학적 분석

기획할방 (신선) 2023 春
 - [전경]의 진묵과 봉곡을 중심으로

 




 대순종학지 3집에 실린 논문 - <요약>

[전경] 공사 3장 14~15절에 언급되고 있는 진묵과 봉곡의 비극적 서사는 그간 참혹한 죽음으로 인해 진묵이 원을 품고 도통신을 이끌고 이 땅을 떠났으며, 훗날 증산은 해원공사를 통해 이들이 귀환하여 후천선경을 여는 데 역사케 한다는 내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러한 현상학적 측면의 연구에서 궤를 달리하여 이 논문에서는 진묵과 봉곡의 심리 분석을 통해 인간의 심상에 뿌리내린 부정적 감정의 씨앗이 세계문명사를 뒤바꿀 만큼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또한 증산이 묘사하고 있는 두 사람의 심리에서 주요 기제인 시기 질투, 분노, 원망과 같은 일련의 감정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현되는지 살펴본다.
질투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신이 상처를 입을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에 의해 야기된 비탄과 고통, 성공적인 라이벌을 향한 적대감, 손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자기비판적 감정 등이 혼재한 복합적인 감정이다. 봉곡의 질투는 열등감과 증오, 적의와 분노가 혼재한 극단적이고 병리적인 질투이다. 그의 교만한 심상에 뿌려진 질투는 선천세상에 원이 쌓이듯 미움과 열등감이라는 자양분을 토대 삼아 더욱 커지게 되었다.
결국 봉곡 자신과 진묵 모두의 공멸을 초래했고 나아가 동양문명의 쇠퇴를 가져오는 데 시발점이 된다. 인간의 심상 깊은 곳에서 싹트는 감정의 파동이 나비의 날갯짓을 일으켜 거시적으로 문화변동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심리 분석은 대순진리의 중심사상인 해원상생에 이르기 위해 '원(冤)'의 한 단면을 푸는 데 색다른 시선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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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에 눈이 먼 봉곡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여겼던 진묵이 자신의 명성과 유교를 기반으로 하는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학문적 위계질서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고, 이는 곧 증오로 변하여 자기애적 분노와 적대감에 휩싸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질투는 고정된 개념이라기보다는 변증법적 또는 부정의 변증법적으로 전화하는 감정으로 인식하는 것이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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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질투, 부러움, 교만, 그리고 정당화


‘나’와 사적인 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을 격렬하게 질투할 수 있을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대단한 사람’에 관한 뉴스를 매시간 보고 듣는다. 하루아침에 수백억 원을 갖게 된 억세게 운 좋은 복권 당첨자, 어디를 가나 찬사와 환호가 뒤따르는 인기연예인, 수능 전국최고 득점자, 자자손손 대를 이은 재벌, 심지어 미인대회 입상자 등 대중은 이런 범접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람들을 부러워할까? 질투할까? 아니면 둘 다일까?

이탈리아 고전주의 작곡가 살리에리(Antonio Salieri)는 자신을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와 비교하면서 그의 천재적인 음악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음을 깨닫고 열등감과 질투에 휩싸였다.

비교는 그에게 매우 파괴적인 질투를 유발하게 만든 촉매제와 다름없었다.

그의 모차르트에 대한 감정은 처음에는 부러움에서 시작해 질투로 바뀌고 질투는 이내 적의로 전화(轉化)했다. 그리고는 적의가 최고조에 다다르자,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적으로 규정하며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하였다.

봉곡의 진묵에 대한 감정도 살리에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임진왜란 이후 승려의 평판이 개선되고 유학자들 사이에서 고승들과의 교류가 빈번해졌던 것을 고려하면, 봉곡이 처음에는 진묵에게 적의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봉곡은 진묵과 교분을 쌓아가면서 내심 진묵의 학문적 깊이에 감탄하고 부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러움은 어느새 질투와 적대감으로 바뀌어 버렸다. 질투는 부러움과는 달리 경쟁자와 비교해 자신의 상황이 비슷하거나 우월하다고 여길 때 일어난다.

예를 들면, 평범한 사람은 빌 게이츠의 엄청난 부(wealth)를 부러워할 수는 있지만 자신이 도달하기에는 사회적 격차가 너무나 커 그를 향한 질투의 감정은 작동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나 유재석의 현란한 말솜씨를 부러워하지만 그들의 재능은 질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부러움과 질투는 이처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지만 어떤 한 개인을 향해 열등감이 개입하지 않는 한 부러움의 감정이 생길 수는 있어도 질투의 감정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수사학(The Rhetoric)]에서 부러움의 양면성을 지적했다. 선량한 부러움은 존경으로 끝나지만 그것이 부정적 형태로서 질투로 이어질 때에는 타인의 행운 또는 행복이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존 로울스(John Rawls)는 질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고자 할 때 드러나는 데 비해 부러움은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을 갖고 싶을 때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부러움에서 시작한 봉곡의 감정은 조선 사회에서 천시받던 승려 진묵으로 인해 유학자로서 자신의 명성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월감이 열등감으로 전치되면서 진묵에 대한 부러움은 질투의 감정을 움트게 하였다.

‘적의(enmity)’ 또는 ‘원한(rancor)’은 부러움의 대상이 해코지 당하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내재된 감정이다. 엡스타인(Epstein)에 의하면, 적의는 유ㆍ무형의 욕망의 대상이 자신에게서 이탈할 때 느끼는 좌절감에서 비롯된다. 그런 의미에서 적의의 뿌리는 부러움이다.

따라서 봉곡은 당시만 해도 종교로서 공인조차 받지 못한 불교의 보잘것없는 승려 진묵이 정통 유학자인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초인적인 재능과 학문적 소양을 갖춘 것에 좌절감을 느꼈고, 이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적의’의 감정을 키워내고 있었다. 결국, 도덕과 이성이 뒤틀리며 봉곡의 질투는 파괴적인 적의로 전이하는 가운데 두 사람을 공멸의 길로 내몰았다.

진묵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승려로서, 학자로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점이 그가 해탈에 이를 정도로 완벽한 인품을 지녔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육도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인간의 몸으로 사는 이상 그 누구도 번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14절에서는 사대부를 거침없이 조롱하고 15절에서는 자신의 뜻을 좌절시킨 봉곡에 대하여 원망과 분노를 쏟아내며 저주를 퍼붓는다.

그런데 이런 진묵의 행동 기저에는 놀랍게도 교만(hubris)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을 높이기 위해 타인에게 수치심을 안기는 행위를 교만이라고 규정한다. 심리학적으로 교만은 객관적 사실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능력이나 성공을 과장하는 데서 비롯되거나 객관적으로 우월적 위치에 있더라도 자신의 능력과 성공을 과시할 때 나타나며, 극단적으로는 우월감에 기초하여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조롱하고자 할 때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목적 또는 이유에서 발생하든, 교만은 개인의 정신적, 학문적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진묵이 봉곡과의 관계에서 우월감을 내재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결국, 봉곡이 수치심과 분노라는 적대적 감정을 갖게 된 데에는 진묵의 교만도 일정 역할을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모욕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깔보고 업신여김으로써 자기가 그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

진묵의 교만은 봉곡이 평생을 정진하며 추구했던 유교적 세계관에 대한 조롱이나 모멸적 행위로 여겨져 더 큰 분노를 야기했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런 심리적 고통이 해소되지 못하고 봉곡에게 복수의 정당화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결국 진묵에게 육신의 죽음을 가져오며 또 다른 부정적 감정으로서 원망을 잉태케 했다. 그리고 이 원망은 봉곡의 자손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동양의 도통신을 서양으로 옮겨가도록 만들었다.

 

 

출처 : 대순종학 학술지 [3집] 수록논문 일부발췌

'초록 눈의 괴물', 질투의 심리학적 분석 -『전경』의 진묵과 봉곡을 중심으로-

http://dsstudies.org/apl/ko/paper/search#list,10,1,selectSearchList,vol=3&s_type=&keyword=&refresh=23


할방 (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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