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사상에 나타난 진묵설화의 관점과 불교의 진묵설화와의 비교

기획비상 (날개) 2023 春
 - - 불교와 대순사상에 나타난 진묵설화의 차이점 - 논문일부발췌

 

 

글 이병욱

 

1. 대순사상의 진묵설화에 대한 관점

 

[전경]에서는 이 화신불의 이미지를 수용해서 진묵을 불교의 종장(宗長)으로 삼는다. 이는 진묵이 불교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또 어느 날 상제께서 말씀하시길 「선도(仙道)와 불도(佛道)와 유도(儒道)와 서도(西道)는 세계 각 족속의 문화의 바탕이 되었 나니 이제 최 수운(崔水雲)을 선도(仙道)의 종장(宗長)으로, 진 묵(震黙)을 불교(佛敎)의 종장(宗長)으로, 주 회암(朱晦庵)을 유 교(儒敎)의 종장(宗長)으로, 이마두(利瑪竇)를 서도(西道)의 종장 (宗長)으로 각각 세우노라」고 하셨도다. 

 또한 [전경]의 다른 대목에서도 진묵이 불교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나아가 선도, 불교, 유교의 법술에 차이점이 있고, 선도가 제일 뛰어나고 그 다음 불교, 마지막이 유교라고 말하고 있다.

 

지나간 임진란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에 불과하 고, 진묵(震默)이 당하였으면 석 달이 넘지 않고, 송 구봉(宋龜 峰)이 맡았으면 여덟 달에 평란하였으리라. 이것은 다만 선ㆍ불 ㆍ유의 법술이 다른 까닭이니라. 옛적에는 판이 좁고 일이 간단 하므로 한 가지만 써도 능히 광란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되 오 늘날은 동서가 교류하여 판이 넓어지고 일이 복잡하여져서 모 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혼란을 능히 바로잡지 못하리라.  

 그리고 [전경]에서 진묵의 설화는 천지공사와 해원상생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는 앞에 소개한 [진묵조사유적고]의 내용과는 다른 것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진묵은 김봉곡에 의해 몸을 잃게 되어 죽은 뒤에 원(冤) 을 품었는데, 강증산은 이 진묵을 해원시키고 선경(仙境)의 건설, 곧 천지공사에 활용한다고 말한다. 이 내용에 관한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상제께서 하루는 종도들에게 「진묵(震默)이 천상에 올라가서 온갖 묘법을 배워 내려 인세에 그것을 베풀고자 하였으나 김 봉곡(金鳳谷)에게 참혹히 죽은 후에 원(冤)을 품고 동양의 도통 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화 계발에 역사하였나니 라. 이제 그를 해원시켜 고국(故國)으로 데려와서 선경(仙境) 건설에 역사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그리고 [전경]의 다른 대목에서 강증산이 천지공사를 행했는데, 그것이 어떤 내용인지 아무도 몰랐는데, 진묵을 초혼(招魂)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만약 진묵을 초혼한 것이라면, 여기서도 천지공사를 하는 데 진묵이 활용된 것이다.

 

 

 

2. ‘김봉곡과 진묵의 관계’에 관한 설화의 차이점

 

[전경]과 [진묵조사유적고]에 김봉곡(金鳳谷, 1575~1661)33)과 진묵이 서로 교류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그 내용은 대개 비슷하지만, [전경]과 [진묵조사유적고]에서 중요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전경] 에서는 김봉곡이 원래부터 시기심이 많았고 그래서 그는 뛰어난 재주를 가진 진묵에 대해 시기심을 품었다는 것에 비해서, [진묵조사유적고]에서는 김봉곡과 진묵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면, 먼저 [전경]의 내용부터 살펴본다.

 

상제께서 전주 봉서산(全州鳳棲山) 밑에 계실 때 종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시니라. 김 봉곡(金鳳谷)이 시기심이 강한지라. 진묵(震默)은 하루 봉곡으로부터 성리대전(性理大典)을 빌려 가 면서도 봉곡이 반드시 후회하여 곧 사람을 시켜 찾아가리라 생 각하고 걸으면서 한 권씩 읽고서는 길가에 버리니 사원동(寺院 洞) 입구에서 모두 버리게 되니라. 봉곡은 과연 그 책자를 빌려 주고 진묵이 불법을 통달한 자이고 만일 유도(儒道)까지 통달하면 상대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또 불법을 크게 행할 것을 시기 하여 그 책을 도로 찾아오라고 급히 사람을 보냈도다. 그 하인 이 길가에 이따금 버려진 책 한 권씩을 주워 가다가 사원동 입 구에서 마지막 권을 주워 돌아가니라. 그 후에 진묵이 봉곡을 찾아가니 봉곡이 빌린 책을 도로 달라고 하는지라. 그 말을 듣 고 진묵이 그 글이 쓸모가 없어 길가에 다 버렸다고 대꾸하니 봉곡이 노발대발하는도다. 진묵은 내가 외울 터이니 기록하라고 말하고 잇달아 한 편을 모두 읽는도다. 그것이 한 자도 틀리지 않으니 봉곡은 더욱더 시기하였도다.  

[진묵조사유적고]에도 앞에 언급한 내용과 비슷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그렇지만 앞에 소개한 [전경]의 내용에서는 김봉곡의 시기심이 강조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진묵의 능력이 강조되고 있다. [진묵조사유적고]에 따르면 진묵은 유교([강목])의 내용도 달통한 인물로 표현되고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진묵은] 만년에는 항상 봉서사(鳳棲寺)에 머물렀다. 절에서 멀지 않은 곳에 봉곡(鳳谷)선생이 있었는데 [그는] 당시의 유현 (儒賢: 경학에 정통하고 언행이 바른 선비)이었다. [진묵은] 봉 곡선생에게 [강목]을 빌렸는데 바랑에 넣고 짊어진 채로 갔다. [이 때] 봉곡선생은 사람을 시켜 [진묵의] 뒤를 따라가서 [동정 을] 살피도록 하였다. [진묵은] 걸어가면서 [책을] 펴서 읽었는 데, [강목의] 한 권을 손으로 꺼내서 다 읽고는 땅에 버리고 다시 [강목의] 한 권을 꺼내서 [다 읽고는] 땅에 버렸다. 이 와 같이 해서 봉서사의 문에 이르렀을 때에는 [강목의 책을] 땅에 모두 버렸는데, [진묵은] 돌아보지도 않고 [봉서사로] 들 어갔다. 다른 날에 봉곡선생이 진묵에게 “책을 빌려서 땅에 버 린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물었다. 진묵은 “고기를 얻었으 면 통발을 잊어버리는 것이요.”라고 답하였다. 봉곡선생이 [강목의] 편(篇)마다 어려운 대목을 거론하였는데, [진묵은] 환하 게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진묵조사유적고]에서는 [전경]의 내용과는 달리 김봉곡과 진묵의 관계가 나쁘게 묘사되어 있지 않다. 이는 앞의 2장 4절 유불일치의 정신에서 언급하였듯이, 김봉곡은 진묵이 입적하였을 때 애도하였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김봉곡은 진묵에게 음식을 보내주었고, 진묵은 김봉곡의 집에 방문하기도 하였다. [진묵조사유적고]에서는 진묵의 이미지를 유교의 내용을 통달하고 또한 당시의 뛰어난 유생(김봉곡)에게 대접을 받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어느 날 봉곡 선생이 어린 여종에게 진묵대사에게 반찬을 보 내도록 하였는데, 중간쯤에서 [어린 여종이] 진묵이 허공을 바 라보면서 배회하다가 서있는 것을 보았다. 여종은 진묵의 앞에 서 심부름을 받은 내용을 알렸다. 진묵이 “너는 아이를 낳고자 하는가?”라고 물었고, 여종은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진 묵이 “그대가 복이 박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너는 돌아가서 봉 곡선생에게 내가 갈 것이라고 말하라.”고 말하였다. 여종이 돌아 가서 [그 말을] 전했다. 봉곡선생이 [진묵을] 기다렸는데 이미 도착할 시간인데도 아주 늦게 도착한 것을 이상하게 여겨 물었 다. “어찌해서 오는 것이 늦었습니까?” 진묵이 “우연히 한 조각 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있는데, [이것이] 서쪽 끝에서 흘러들어 오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가장 만나기 어려운 기운이어서 [그 기운에 적합한 사람에게] 넣어주려고 하였는데, 그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 기운이] 흩어져서 상서롭지 못한 곳으 로 흘러갈 것을 걱정해서 허공 바깥으로 멀리 몰아내었습니다. 그래서 오는 것이 자연히 늦어졌을 따름입니다.” 

또한 진묵의 대자유의 경지를 노래한 게송(시)이 전하고 있는데, 이것도 김봉곡과 진묵이 교류할 때 나온 게송일 것이라고 초의는 추정하고 있다. 이 점에서도 김봉곡과 진묵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진묵이 일찍이 게송을 읊었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 로 산을 베개로 삼으며, 달을 촛불로 삼고 구름을 병풍으로 바 다를 술통으로 삼아, 크게 취하여 갑자기 일어나 춤을 추니, 긴 소매에 곤륜산이 걸릴까 하노라.” 살피건대(초의의 주석) 진묵 과 봉곡선생이 시(詩)의 운(韻)을 맞추어 시를 지은 것이 많다 고 하는데, 세월이 점점 오래되면서 [그 시들이] 흩어져 전해지 는 것이 없으니 애석한 일이다.

그렇지만 [전경]에서는 김봉곡과 진묵의 관계는 좋지 않은 것으로 묘사된다. 김봉곡은 진묵이 시해(尸解: 육체에 혼백이 빠져나온 상태) 한 몸을 태워 없애서 진묵이 자신의 몸에 돌아오지 못하게 한다. 그로 인해 진묵은 김봉곡의 후손이 호미를 들고 일을 해야 할 것이라는 일종의 저주를 하였다. 그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후에 진묵이 상좌에게 「내가 八일을 한정하고 시해(尸解) 로써 인도국(印度國)에 가서 범서와 불법을 더 익혀 올 것이니 방문을 여닫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고 곧 입적(入寂)하니라. 봉 곡이 이 사실을 알고 절에 달려가서 진묵을 찾으니 상좌가 출타 중임을 알리니라. 봉곡이 그럼 방에 찾을 것이 있으니 말하면서 방문을 열려는 것을 상좌가 말렸으나 억지로 방문을 열었도다. 봉곡은 진묵의 상좌에게 「어찌하여 이런 시체를 방에 그대로 두 어 썩게 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하나니라」고 말하면서 마당에 나뭇더미를 쌓아 놓고 화장하니라. 상좌가 울면서 말렸으되 봉 곡은 도리어 꾸짖으며 살 한 점도 남기지 않고 태우느니라. 진 묵이 이것을 알고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 나는 아무런 원수진 것이 없음에도 어찌하여 그러느냐.」 상좌가 자기 스님의 소리를 듣고 울기에 봉곡이 「저것은 요귀(妖鬼)의 소리 라. 듣지 말고 손가락뼈 한 마디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 라」고 말하니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네가 끝까지 그런다면 너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를 면치 못하리라」 하고 동양의 모든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옮겨 갔도다.

 

3. ‘전주에 사는 한 아전의 신이한 체험’에 관한 설화의 차이점

 

[진묵조사유적고]와 [전경]에서는 전주에 사는 한 아전이 진묵에게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부탁해서 그 일을 해결했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그 내용은 대개 비슷하지만, [전경]과 [진묵조사유적고]에서 중요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진묵조사유적고]에서는 진묵이 나한에게 명령을 내리는 존재이고 이는 진묵이 부처의 화신이라는 점을 나타내는 것인 데 비해서, [전경]에서는 북두칠성을 감추는 진묵의 신이한 힘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진묵조사유적고]의 설화에는 진묵이 부처의 화신이라는 개념이 숨어 있다. 그래서 진묵은 자신이 직접 그 아전의 일을 돕지 않고 나한에게 명령을 내렸고, 나한은 진묵의 명령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른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주부에 숨어있는 아전이 있었는데, [이 아전이] 평소에 진 묵과 좋은 관계였다. [이 아전은] 수백 량의 관물을 사사롭게 소비하고 장차 도망하고자 하였다. [그는] 진묵에게 와서 말씀 을 드렸는데, 진묵은 “관물을 소비한 것으로 인해 도망하는 것 이 어찌 남아의 일이겠는가? 다만 집에 돌아가서 몇 말의 쌀을 준비하고 다시 이 절에 와서 나한에게 공양하면 장차 좋은 도리가 있을 것이다.”고 말하였다. 아전이 [집으로] 가서 [진묵 의] 가르침대로 [쌀을 준비해서] 왔다. 진묵은 시자에게 [아전 이 가지고 온 쌀로] 밥을 만들어서 나한에게 공양하라고 지시 하였다. 그리고 나서 [진묵은] 아전에게 “전주부 가운데에 혹시 비어있는 관직 자리가 있는가?”라고 물었고, [아전이] “감옥의 형리(刑吏) 자리가 비어있는데, [이 자리는] 너무 [수입이] 박 하고 재미도 없습니다.”고 답하였다. 진묵은 “재미없다고 말하 지 말라. 빨리 가서 [형리의 아전을] 맡겠다고 자청하라. 그러 나 30일을 넘지 않기를 바라네.”고 하였다. 아전이 돌아가자 진 묵은 주장자를 가지고 나한당에 들어가서 나한의 머리를 순서 대로 3번 때리고서 말하기를 “모 아전의 일을 잘 돕도록 하라.” 고 하였다. 다음 날 밤에 나한이 그 아전의 꿈에 나타나서 꾸짖 으며 말하기를 “네가 구하는 것이 있으면 마땅히 우리(나한)에 게 곧장 와서 말할 것이지 어찌 진묵대사에게 부탁해서 우리를 수고롭게 하는가? 너의 소행으로는 들어주지 않을 것이 옳은 것이지만 진묵대사의 명령이니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은 너의 일을 봐주기는 하지만 후에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에] 아전이 [나한의] 도움이 있을 줄 알고 감옥의 관리가 될 것을 자청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감옥의 송사가 많이 생겨서 죄인이 감옥에 가득 차서 [감옥의 관리가 된지] 30일 안에 부족한 관물을 다 채우게 되어 다른 관리에게 자리(감옥의 관리)를 양보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 감옥 의 관리는 뇌물을 요구한 죄로 체포되었다.

그에 비해, [전경]에서는 앞에 소개한 것과 같은 주제의 내용을 전하고 있지만, 강조하는 점이 다르다. [전경]에서는 진묵이 북두칠성을 7일 만에 모두 숨겨서 나라에서 사면령을 내리게 했다는 신이한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진묵조사유적고]에서는 진묵이 나한에게 명령을 내리는 존재, 곧 부처의 화신이라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전경]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김 형렬은 상제를 모시고 있던 어느 날 상제께 진묵(震黙)의 옛일을 아뢰었도다. 「전주부중(全州府中)에 한 가난한 아전이 진 묵과 친한 사이로서 하루는 진묵에게 가난을 벗어나는 방법을 물으니 진묵이 사옥소리(司獄小吏)가 되라고 일러주니 아전은 이는 적은 직책이라 얻기가 쉬운 것이라고 말하고 자리를 떠났 으나 그 후에 아전은 옥리가 되어 당시에 갇힌 관내의 부호들을 극력으로 보살펴주었나이다. 그들은 크게 감동하여 출옥한 후에 옥리에게 물자로써 보답하였다 하나이다. 그리고 진묵은 밤마다 북두칠성을 하나씩 그 빛을 가두어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 여 七일 만에 모두 숨겨버렸다 하나이다. 태사관(太史官)이 이 변은 하늘이 재앙을 내리심이니 천하에 대사령을 내리시어 옥문 을 열고 천의에 순종하사이다 하고 조정에 아뢰오니 조정은 그 것이 옳음을 알고 대사령을 내렸다 하나이다.」 이 말을 상제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그러하였 으리라. 내가 이를 본받아 한 달 동안 칠성을 숨겨서 세상 사람 들의 발견을 시험하리라」 하시고 그날 밤부터 한 달 동안 칠성 을 다 숨기시니 세상에서 칠성을 발견하는 자가 없었도다.

 

출처 :  대순사상논총 Vol.29 No.-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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